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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Apr 23. 2024

예술가와 뮤즈

"내 안에 악상을 떠올리게 하는 물레방아가 있어. 그런데 그게 작동을 안 하니까 미칠 지경이야." 드보르작이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나의 뮤즈에게>에서 주변인들에게 말한다.


옛 연인이기도 했던 뮤즈의 존재로 악상을 떠올리며 인간적으로 기대지만 현실은 차갑다. 아내의 도끼눈, 주변과의 불협화음은 그를 정서적 안식처를 잃고 방황하게 만든다.  미국에서 금의환향한 마에스트로에게  조국 체코의 환대도 대단했고 모든 여건이 괜찮았다. 그렇지만 정서는 늘 불안했다. 옛사랑을 향한 그리움이 늘 마음속의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드보르작의 아내도 우연히 발견하게 된 편지를 통해 그의 고민을 알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뮤즈를 향한 연모는 <유모레스크>를 비롯한 다양한 곡들의 악상에 스며들어있다.


베토벤에게는 정체가 불분명한 '불멸의 연인'이 있었고, 쇼팽에게는 조르주 상드가 있었다. 오선지와 캔버스, 원고지에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은 예술가나 작가마다 다르겠지만, 경우에 따라 뮤즈를 연모하는 마음도 있었음은 그들의 일대기를 통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순수한 사랑과 불륜의 경계는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예술가도 성직자가 아닌 인간이기에 위대한 작품을 보고 역사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너그럽게 정서적인 사면을 해줄지는 늘 후대인들이 몫이다.

  

비올리스트이기도 한 드보르작은 제자들을 집에서 사사하며 소품을 연습하기도 했다. 스크린에 비친 마에스트로는 저 언덕 너머 어딘가에 있을 뮤즈와관계가 원만했을 때는 관대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가족과 제자에게 버럭버럭 화만 냈다. 


체코에서 '신세계' 아메리카로 건너가 클래식의 신세계를 개척하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대단한 예술가 드보르작이었다. 바흐와 헨델에게도 점수가 인색했던 차이코프스키도 동시대인인 그의 음악성을 높게 평가한 작곡가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도 자연의 소리와 가슴 졸이며 기다린 뮤즈의 음성을 듣고 악상의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했을 때는 그저 한 명의 보통 인간 안토닌이었다. 


마음이 중요해. 느낌이 중요하고, 감동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뭔가가 있어야 해. 악보 위 음표가 중요한 게 아니야. 악보 위 음표는 내가 가르쳐줄 수 있지만 나머진 가르쳐 줄 수 없어.

  - 글렌 론랜드(리처드 드레이퍼스 분), 영화 <홀랜드 오퍼스, 1995) 중에서



**♪Dvorak : 4 Romantic Pieces, Op. 75, B. 150 / Kyung-Wha Chung、Itamar Golan 1998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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