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예술가의 붓질

위대한 색의 마술사, 그 솜씨를 감상할 시간

by 호림

화가나 서예가는 덧칠을 금기시하는 사람도 있고, 색이나 글자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덧칠로 보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곡가도 오선지를 무수히 파지로 만들어가며 작곡하는 스타일도 있고, 일필휘지로 악상을 적어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베토벤을 다룬 영화 <카핑 베토벤>에는 베토벤이 잘못 기록한 오선지를 신경질적으로 구겨서 집어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연필로만 작품을 쓴다는 김훈 작가에게도 그렇게 파지를 많이 만드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은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신의 집을 청소하는 여인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청소부가 불쏘시개로 써서 사라졌을 수도 있고, 어떤 안목 있는 청소부는 잘 보관해 두었다면 집 한 채를 장만할 횡재를 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보는 사람의 판단도 있겠지만,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작가 스스로의 검열을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자연의 시계는 항상 큰 변화가 없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자연'이라는 예술가는 가을이 되면 항상 여름에 만든 거대한 녹색 캔버스 위에 울긋불긋한 색을 덧칠해 입히고 있습니다.

때로 조금 일찍이거나 늦게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그 높은 예술성을 유지합니다.

가을 절경을 이루는 색색의 단풍은 언제나 인간이 만든 예술품을 초라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높은 하늘과 어우러진 '가을'이라는 작품 앞에 가슴앓이를 하고 가을앓이를 하는 마음을 어찌 탓할 수 있을까요.


가을 깊은 서정에 가슴 베이지 않을 방법을 알려 달라는 친구의 말에 아마도 '자연'이라는 예술가 외에는 답할 능력이 없거나 대답을 더듬거릴 것입니다. 나의 경우처럼.

오늘 더 빨리 다가온 추위는 단풍의 색상을 더 진하게 만들 수 있겠지요. 가을의 서정은 더 깊어가고 가을날에 베인 친구의 상처가 더 깊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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