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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 거인들 앞에서

by 호림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은 다양한 콘텐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될 때 오픈 소스가 되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저작권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고전도 클래식을 닮았다. 어떤 이는 고전을 읽으며 생사의 고빗길을 넘기고 책을 썼다. 연예인이었던 작가는 연구실적이나 배움의 이력이 대단한 석학은 아니다. 학자가 아닌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고전의 지혜를 쉽게 풀어낸 것이다.


저녁에 시내 대형서점을 둘러보고 책을 구입하려고 어슬렁거리다 시선이 책 제목들 앞에 멈추며 떠오른 생각들이다.


어떤 이는 오십에 읽는 공자를 얘기하고 또 다른 저자는 마흔에 곱씹어보는 쇼펜하우어를 책에서 풀어내 대단한 호응을 얻은 이도 있다. 만약 쇼펜하우어나 공자의 후손이 저작권을 챙기며 함부로 바이블과도 같은 조상의 말과 글에 대해 접근 금지를 외쳤다면 어땠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듯 '오리진'이 되긴 여간해서는 어렵다. 오리지널의 힘을 가진 말과 글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더 빛난다. 거인들의 말과 글을 편집하고 해석하는 것 또한 보석을 더 빛나게 하는 일이고 그런 일을 잘하는 이도 작가로 대접받는다.


음악의 언어는 선대에 만들어진 8음계 체계로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오선지 위에서 자신의 생각을 악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숭앙하던 현대의 작곡가들 또한 수백 년 후 베토벤 버금가는 대접을 꿈꾸고 오선지와 씨름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의 것보다 더 좋아 보이는 문장, 더 멋지게 들리는 선율을 뚝딱 만들어서 코앞에 들이대는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나타났다. 막연하게나마 인간의 숨결이 스민 글의 향기를 아직은 믿는 편이다. 언젠가 그런 생각도 고색창연해지고 그런 믿음에 기댄 이들은 점점 멸종되어 차가운 기계에 문학과 예술을 의존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서점에 빽빽이 들어선 인파들의 진지한 눈빛은 그런 일은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도 상상한다. 더 성능 좋은 기계를 만드는 일만이 인간의 일로 좁혀지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노트북에 자신의 생각을 꾸역꾸역 타이핑하는 자칭 타칭 작가들은 멸종하거나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는 기인으로 분류되는 세상이 곧 들이닥치는 건 아닐까?


빅테크 기업들의 지형도가 하루게 다르게 변하고 'AI'라는 말이 뉴스에서 쉼 없이 등장하는 시대다.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몸처럼 위축된 내 1.4kg의 우주, 이 허점투성이 자연지능은 따뜻한 인간의 온기와 클래식을 생각하고 있다.


그 생각의 우주 한 구석에서 적당히 세상의 눈높이와 타협하며 클래식으로 남을 거창한 삶이 아닌 불완전함을 즐기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그런 타협은 언제나 달콤해도 마음은 늘 고전으로 남은 거인들 앞에서 불편하기만 하다.




Offenbach Les larmes de Jacqueline - Camille Thomas ONBA Diego Mathe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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