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 오감은 특히나 중요하다.
그중에서 음악가에게는 귀, 화가에게는 눈이 생명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그 소중한 감각기관을 상실할 위기를 겪으며 생의 말년에 예술과 씨름한 두 거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프랑스인으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 클로드 모네를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독일 아니 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음악가 베토벤, 두 사람은 생의 말년에 시각의 장애로 청력상실로 고통받으면서 걸작을 남겼다. 모네는 경제적 궁핍을 견디며 중년의 시간을 보내고 그림이 제법 팔려 부와 유명세를 누릴 즈음에는 백내장에 걸려 실명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특유의 색채감각을 발휘해 걸작을 쏟아냈다.
제9번 합창교향곡의 탄생과 베토벤의 말년은 더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연작은 모네가 백내장의 고통 속에서 남긴 작품이다.
거장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필요한 감각기관이 치명적으로 훼손된 절실함 속에서 마음의 눈과 귀로 예술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대가들이 예술을 대하는 마음은 오감이 멀쩡할 때와 절실함의 크기가 달라져 마음의 눈과 귀가 극도로 예민해진 건 아닐까.
인도의 파우자 싱 옹이 100세 무렵에 마라톤을 완주한 이야기, 짐 에버트라는 조막손 투수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섰던 이야기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한계에 도전하고 그것을 극복한 수많은 스토리가 스포츠 세계에도 존재한다. 최근에도 한 팔 없는 농구선수가 미국에서 공식 경기에 데뷔했다는 소식이 외신에 보도됐다.
위대한 성취는 겹핍에서 나올 수 있다. 아무런 자극이 없고 만족한 가운데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배부른 돼지보다 높게 평가하는 건 어떤 사상가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우린 모두 배부른 소크라테스를 꿈꾸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은 크고 작은 결핍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것이 '인간'이란 직업의 속성임을 알면 억울함이나 분노, 절망 같은 감정들은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로 승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베토벤이나 모네가 그랬듯.
Wiener Philharmoniker - Maurice Ravel - Bolero - Regente Gustavo Dudamel (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