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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알고리즘

by 호림

‘알고리즘’이라는 말은 AI 시대에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 중의 하나다. 문외한이라도 컴퓨터 작동의 기본원리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알고리즘은 페르시아 수학자 알 콰즈마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9세기에 수학 계산 방법을 설명한 저서를 낸 사람이다. 최초의 수학 알고리즘은 4,000년 전 수메르 점토판에서 나눗셈을 하는 방식에서 엿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알고리즘을 넓게 해석하면 요리나 다양한 도구를 만드는 인간사회에 넓게 적용할 수도 있다. 인간은 특정한 메뉴얼을 후대에 전승하면서 특정한 ‘로직’을 체화시키는 능력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영장류로 지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이 아닐까.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의 행동은 알고리즘, 즉 일정한 논리체계의 지배를 받는다. 물론 엉뚱한 실수나 파격으로 삶의 방향이 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 예측가능성에 기반한 행동들을 하기에 사회과학에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다각도로 일반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행동경제한, 심리학, 인지과학 등의 다학제적인 연구가 이런 인간 행동의 여러 비밀들을 밝혀내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일반화할 수 있는 완벽한 알고리즘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비서업무를 한 적이 있다. 비서 관리를 맡아서 일할 때 보스가 어떤 사람을 선호할지를 정확히 말로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요구사항을 맞춰보려고 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단정한 용모와 문서업무, 친절한 응대 요령 외에 차별화하는 요소를 챙기며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해서 면접을 보면 가정환경이나 다양한 변수들이 추가로 생기면서 어그러진 경우도 있었다. 또 약간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이도 의외의 답변에서 호감을 얻고 좋은 결과를 얻는 사례도 보았다.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행성의 궤도가 타원임을 밝혀낸 탁월한 과학자였다. 그를 시작으로 갈릴레오와 뉴턴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지동설이나 우주에 대한 인류의 과학적인 사고는 굳건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케플러 같은 대단한 과학자도 자신 인생에 닥친 문제는 과학적 알고리즘으로는 풀 수가 없었다.


그에게 우주의 문제가 아닌 지상에서 자신에게 닥친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이혼 이후 최적의 배우자를 찾는 문제였다. 케플러는 재혼을 위해 11번의 맞선 끝에 그중 한 여성과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낳고 행복한 후반생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케플러는 생의 알고리즘을 되돌려 다섯 번째로 본 여성과 다시 만나 결실을 맺었다. 만약 컴퓨터라면 ‘예스’와 ‘노’, ‘0’과 ‘1’ 사이에 어떤 것도 없이 지나간 여성은 냉정하게 보냈겠지만 이 대과학자는 숱한 번민 끝에 결정을 되돌려 다시 다섯 번째 여인을 배우자로 맞아들얐다.


계획은 늘 순조롭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대개는 뜻하지 않는 풍랑과 장애물로 고초를 겪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물론 실력으로 착각하는 행운에 우쭐해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초등학생 때의 계획대로라면 누구나 장군이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ek. 하지만 군의 보직을 무한정 늘리거나 대통령을 수천 명 두는 제도가 아닌 이상 많은 꼬마친구들의 계획이 좌절되거나 궤도를 수정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알고리즘대로 우리 삶이 진행되지 않기에 인생이 더 매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한 행운과 불운, 기쁨과 고통은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마련된 소중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예술도 그런 공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인간 최고의 발명품일 수 있다.


그런 숨통을 틀 여지를 막아버린다면 인간은 알고리즘에 지배당하는 타협 없는 기계가 될지 모른다. 간혹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나 광장에서 너무 지나친 확신으로 우리에게 기계가 되길 강요하는 사이비 현자들의 목소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어느 특정한 방향이 되었든 간에.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한 대 얻어터지기 전에는.

- 마이크 타이슨(복싱 선수)




Mozart - Concerto no 23 in A major k 488 - Daniil Trifonov and the Israel Camerata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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