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계획이 작심 3일의 벽을 넘기고 두 달이 지났다면 칭찬할 일이다.
겨울은 지나고 봄은 어김없이 왔다. 흑백의 시간들이 가고 천연색으로 산천이 물들어갈 시간이다. 혹독한 정신의 겨울을 이겨낸 이들만이 찬란한 봄을 맞을 수 있다. 거저 주어진 것들의 가치는 생명력이 약하다.
책꽂이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발견한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참상을 증언한 말들을 다시 보았다. '로고테라피'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생각해 낸 이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경험을 아흔을 넘기며 세계에 전파하며 삶의 가치를 전파했다. 이 완고한 작가에게서 나치의 총칼이나 그 누구도 그가 가진 생각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 옆에 꽂혀있는 발터 벤야만이라는 예술철학, 매체미학 분야 거장의 저서들을 만나면 안타까움이 크다. 유대인으로 나치의 위협을 피해 국경을 넘다가 발각될 위기에서 자살을 택했다. 그가 남긴 대단한 학문적 업적이 만약 쉰 살을 넘기며 생의 후반에도 활짝 피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기에.
발터 벤야민을 연구했던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가 그 옆에 서 있다. 그 또한 병마와 싸우다 요즘 치고는 짧은 66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가 투병 중에 쓴 글로 채워져 이제는 유작이 된 책에는 담담하지만 눈부신 산문들이 반짝인다.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아침 베란다에서 거리를 내다본다. 파란색 희망 버스가 지나간다. 저 파란 버스는 오늘도 하루 종일 정거장마다 도착하고 떠나고 또 도착할 것이다.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별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소중한 삶을 민족과 국가을 위해 송두리째 바친 선열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삶을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를 이긴 그분들이 감당했던 그 무게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캄캄한 조국의 겨울을 견디며 빼앗긴 봄을 찾았기에 가능했을 이 안전한 일상에서 실천할 1그램의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다시 내 안에 웅크린 '새해 작심'을 실천하고자 시동을 건다.
- 무명씨
Arthur Rubinstein - Grieg - Piano Concerto in A minor, Op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