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의 여인, 셰에라자드를 알 것이다. 왕 앞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여인들의 운명을 알았지만 자신은 '이야기'라는 무기가 있기에 운명적인 도전에 나선 고관의 딸이다. 이제 셰에라자드도 죽음의 무대로 걸어 들어갔다.
왕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매일 밤 이야기를 왕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천일 일(千一日) 동안 반복한다.
왕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나머지 천한번째 밤이 지나도록 셰에라자드를 죽이지 못했다. 성인남녀가 밤에 손잡고 이야기만 할 수도 없으니 중간중간 사랑을 나누었고, 아이까지 생기게 된다. 원한이나 증오도 다 잊고 여성불신을 극복한 왕은 더 이상의 살육을 이어가지 않게 되어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천일야화>에는 두냐자드라는 동생도 등장한다. 언니에 비하면 비중이 극히 작은 편으로 매일 밤마다 왕과 언니가 침상에 들 때 발치에 앉아 있다가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문을 열어주는 조연인 셈이다. 두냐자드도 왕의 동생과 마음이 맞게 되어 언니가 결혼할 때 같이 왕의 동생과 가약을 맺는다.
<천일야화>의 천일은 한자로 '千一'이다. 1001이라는 숫자는 당시의 아랍 문화권에서 무한하다는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어떤 면에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에 엔터산업 종사자들은 마지막 구원자처럼 나타난 스토리텔러, 즉 셰에라자드다. 그렇지만 대중이라는 '왕'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밑천이 떨어져 가고 자금력도 바닥이 날 때 9회 말 역전 홈런의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중문화 종사자는 어떤 면에서 셰에라자드의 운명을 타고난 흥행사인 것이다. 대규모 예산을 쏟아붓고 실패하는 건 시장에서의 죽음이다. 비록 일시적인 죽음일지라도 실패는 치명적이다. 재기를 위한 피땀 어린 노력이 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의 처참한 실패와 그것을 복구하는 누추한 나날들에 대해 들으면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레드카펫에서 반짝이는 스타와 손잡고 걸어갈 모습을 꿈꾸는 영화인들의 희망을 앗아가는 일은 잔인하다.
그렇지만 현실은 좁은문 밖에서 절규하는 이들의 목소리보다 용케 또는 월등한 능력으로 좁은문을 통과한 이들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스토리에 가려지거나 외면받고 있다.
저녁 으스름이 되었다. 셰에라자드라면 긴장해서 왕에게 즐거움을 줄 이야기의 리허설을 할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날 시간이다.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며 좁은문으로 걸어가는 한 영화인의 쓸쓸한 뒷모습은 희망고문으로 끝날지 아니면 반전의 스토리로 귀결될지 불확실한 그림자를 짙게 드리웠다.
Rimsky-Korsakov: Scheherazade op.35 - Leif Segerstam - Sinfónica de Galic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