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문명이 우리에게 편리와 위험, 두 얼굴을 하고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잡고 있는 가느다란 실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문학과 시, 예술은 아닐까. 헛되고 헛된 욕망은 유한하지만, 그것을 다스리고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지혜의 지평은 무한할 것이다.
잘 나가는 AI기업 엔스로픽의 안전 책임자 므리난크 샤르마가 사임했다. 그는 영국 캠브리지에서 수학·통계학으로 학·석사를, 옥스퍼드에서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으로 박사를 받은 AI 분야 석학이다. 샤르마는 동료들에게 보낸 퇴사 편지에서 “우리는 정말 놀라운 일을 해냈지만, 세상은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라고 썼다. 그리고 자신은 영국으로 시를 공부하러 가겠다고 했다. “과학은 우리에게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지만, 시는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다”라고 했다.
샤르마는 왜 특이하게도 문학에 귀의한다고 선언했을까. 그는 퇴사 편지에서 미국의 시인 윌리엄 스태퍼드의 ‘원래 그런 것’(The Way It Is)을 인용했다. 이 시에는 “변하는 것들 사이로 실이 이어진다. 그 실을 잡고 있는 동안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기계문명의 극단이 우리를 움츠려 들게 하는 시기에 샤르마는 인간다움의 근원을 찾아 그 가느다란 실을 잡기로 한 것일까.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인간다움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 나다움을 잃고 허겁지겁 좋다고 하는 것들을 덩달아 좇아가는 것이 정답일까. 자본을 충분히 축적하고 나서 시를 쓰겠다고 사표를 낸 샤르마가 부럽다고 할 수도 있고, 더 많은 성취의 유혹과 욕망을 위해 '고고'를 외치지 않은 특이한 행로하고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노자는 내가 소유한 것이 세 가지 이상이면 그 소유물이 나를 소유한다고 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 또한 “정원과 책만 있다면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연휴엔 욕망을 줄이고 지금 내가 듣는 아름다운 선율에 온전히 귀를 열거나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의 미소에 마음을 맡기면 어떨까. 물론, 한창 빙판과 설원에서 펼쳐지는 지구촌 청춘들의 질주와 곡예에 내 눈을 맡겨도 좋을 것이다. 이런 시간들은 그 누구도 쉽사리 내게서 앗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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