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가 본격화되면 예술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나?
AI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심지어 지휘대에 마에스트로를 대신해 로봇이 서기도 한다. 소더비 경매에 AI가 그린 그림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인간의 유전자는 공산품처럼, AI처럼 똑같이 복제될 수 없다.
영화 <대부>에서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분)가 아들이 성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 씁쓸한 표정이 떠오른다. “아들이 내 이런 강인한 피를 이어받지 못해 내가 힘들여 건설한 거대한 (악의) 제국을 지키기 힘들겠구나” 하는 실망감으로 읽혔다.
누구나 매끈한 동작과 엄청난 비거리를 내는 PGA, LPGA 선수가 다 될 수는 없다. 초인적인 훈련량을 견디고 만들어낸 것을 금방 족집게 과외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아마 AI라면 적절한 프로그램만 입력하면 공의 발사각이나 거리를 정확히 계산해 원하는 지점에 공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한 것은 AI가 계산된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인간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숨결이 들어있고 때로 실수하고 서툴게 표현된 예술의 자리를 그리 쉽게 기계가 대체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비싼 이유도 그 눈썹이나 표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도난과 같은 인간의 욕망으로 저질러진 많은 이야기를 그 미소 속에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는 무수히 복제될 수 있지만, 다빈치의 붓질로 만든 모나리자는 단 하나가 루브르에 있을 뿐이다.
인간의 몸에 생물학적으로 구현된 지능의 한계는 우리가 현실에서 무수히 체감하고 있다. 자주 잊어버리고 감정적으로 쉽게 흥분하기도 하며 행동의 일관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 보통의 뇌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다. AI는 적절한 로직(logic)만 있으면 에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전원만 공급하면 사람처럼 지치지도 않는다.
많은 부분이 이런 AI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큰 식당에서 서빙하는 작은 로봇은 지금도 상당 부분 활용되고 있고
공장에서도 많은 부분이 자동화라는 이름으로 로봇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뇌과학이 밝힌 바로는 뇌가 지닌 최고로 복잡한 능력은 감정 지능이라고 한다.
레이 커즈와일은 감정이야말로 뇌의 첨단 기능이라고 보았다. 복잡하게 얽힌 우리 뇌의 위계 구조 중 꼭대기에는 감정을 인지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능력, 도덕성을 느끼고 유머를 즐기고 감정으로 예술을 느끼는 능력이 여타 고차원적인 기능들과 함께 불안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뇌의 최고의 자리에 있는 감정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다. 공상과학 영화의 극본이나 소설을 쓰는 사람 이외에는.
어떤 경우는 TV 골프채널의 고교 동창 골프대회의 배 나온 아저씨들의 플레이와 주부들의 대항전이 프로골퍼들의 경기보다 재미있다. 나와 유사한 실수투성이 인간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닿기 때문은 아닐까.
외계인들이 있다면 예술을 “실수투성이 인간의 바보 놀음”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상당 기간 그 어리석은 바보들의 행진을 계속할 것 같다. 사랑을 느끼고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인간의 몸을 한 AI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