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주일 한 달의 리듬으로 일상을 챙기며 휴가나 여행으로 변화를 주어 삶의 활력을 찾듯 클래식 작곡가들도 주선율과 보조 선율을 절묘히 섞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작곡가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선율을 어느 위치에 배치할까의 문제일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자연스러운 한 단락의 멜로디 라인을 프레이즈(parase)라고 하는데 이를 만드는 작업을 프레이징(phrasing)이라고 한다. 작곡가의 일은 프레이징을 통해 소나타나 론도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 전체적인 선율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루나 한 달 단위로 일을 하면서 일 년이나 전체 인생의 완성도를 높이고 높은 성취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일이 삶이 아닐까.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 완성도를 높일 충분한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클래식에 가장 많이 응용되는 형식 중의 하나다 소나타다. 칸타타가 ‘노래하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cantare’에서 나왔듯 소나타는 ‘울려 퍼지다’, ‘연주하다’를 뜻하는 동사 ‘sonare’의 여성명사다. 바로크 시대부터 현재까지, 소나타는 독주곡과 실내악의 중심 장르다.
고전파 이후의 소나타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에서 주로 제1악장에 쓰인 악장 형식이다. 다른 악장에도 쓰이며 론도 형식과 결합해서 론도 ·소나타 형식을 낳는 일도 있다. 고전파부터 낭만파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형식이며 대체로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 종결부(코다)로 구성된다.
고전적 소나타 형식은 하이든, 모차르트에서 숙성되었고, 베토벤에 의해서 형식미의 완성을 보았다. 하이든 모차르트 때에는 처음에는 제시부와, 발전부와 재현부가 통째로 제각기 반복되었다면, 베토벤에 이르자, 발전부가 확대되고 제시부만이 반복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 반복을 생략해 연주하기도 한다.
론도는 소나타보다는 다소 복잡하지만 주기적인 반복의 선율이 들어가는 점은 유사하다.
기악곡에서 주제부(refrain; A)와 삽입부(couplets 혹은 episodes; B, C 등)가 교대하는 형식이다. 즉, 하나의 주제부가 되풀이되는 사이에 삽입부가 끼어져 있고, 그 끝 부분은 주제부로 마무리되는 형식이다(ABAC…A). 우리의 돌림노래 같은 속성이 들어있다고 하겠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11번 ‘터키행진곡’》의 3악장, 베토벤의《피아노 소나타 제8번 ‘비창’의 3악장 등이 있다. 드물게는 성악곡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크리스토프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의 아리아〈에우리디체 없이 어떻게 할까(Che farò senza Euridice?)가 그 예이다. 클래식 음악을 찬찬히 소나타와 론도의 형식을 생각하며 감상을 시도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형식미의 파격으로 클래식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거의 유사한 선율의 무한 반복이다. 당시로서는 워낙 파격이어서 거의 전위 예술을 대하는 것 같은 반응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광고 음악이나 여러 분야에 응용되며 가장 사랑받는 클래식의 하나가 되었다. 같은 선율이라도 악기의 변화 크레센도나 디미누엔도를 통한 강약의 조절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라벨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라벨의 볼레로처럼 거의 매주 산에만 가는 삶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느낀 사나이가 있었다. 산을 타는 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살다 짧은 생을 마감한 이가 있다. 고인의 집에 갔을 때 부친을 보았다. 의외로 담담하게 우리를 위로했던 기억이 새롭다.
산을 좋아하고 산에서 살다시피 한 놈이 산에서 죽었는데 뭐 그리 슬퍼들 하는가. 부모보다 먼저 죽은 건 몹쓸 짓이기도 하고 처자식도 없는 애였기에 불쌍하긴 하지만. 그래도 산 사나이로 굵고 짧게 살다 간 건 괜찮은 삶이 아닌가.
이런 투로 말씀하셨지만, 얼굴에는 슬픔을 삼키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냥 의미 없는 반복이 엿가락처럼 늘어뜨리려는 삶보다는 크고 작은 변화를 주어 의미를 찾는 반복, 언제나 극적인 반전의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이 없다면 인생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소나타 형식이건 론도이건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노력이 없다면, 클래식도 기계적인 반복의 음악이라면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유사한 반복이 있는 듯하나 거기엔 섬세한 강약의 조절이 있고 여러 종류의 악기들이 들고 나는 것이다.
거기에 기막힌 암시와 반전의 장치를 넣고 변화의 에너지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작곡가의 일이고 그 일을 가장 완벽하고 훌륭하게 수행한 사람이 베토벤이 아닐까. 그러기에 200여 년 전 머리를 쥐어뜯었던 천재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런 또 베토벤 교주님 찬양이라니......)
지금 방안에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흘러나오기에 그 짧지만 강렬했던 슈베르트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생애의 길이에 비하면 작품이 적지 않다. 유명한 연가곡집이나 600여 곡에 달하는 곡이 있기에.
그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에게 프러포즈나 제대로 했을지. 측은함을 불러일으키는 독신의 31년. 슈베르트의 삶도 얼핏 짧은 미완성으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 삶이 짧다고 완성도가 낮았다거나 존재감이 약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역설적으로 미완성교향곡을 후대의 많은 음악평론가들이 가장 완성도 높은 멋진 교향곡이라고 하듯이.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이런 음악가들의 소나타와 론도. 그리고 알레그로, 안단테를 가장 정확히 연주한 지휘자는 누구일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의 계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마에스트로 토스카니니의 말이 생각난다. ‘운명’으로 잘 알려진 베토벤 교향곡 5번의 1악장에 연주의 방향을 두고 리허설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이렇게 한마디 하자 소란이 진정되었다고 한다. "이 곡은 알레그로 콘 브리오 일뿐이오"라고. 항상 작곡가의 템포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고 원전에 충실하고자 했고 콧수염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포디엄 위의 황제는 악보에 충실하려는 엄격함 그 자체였다고 한다.
소나타와 론도의 차이를 묻는 어떤 후배의 질문에 답하려다 클래식 음악계 위인들의 면모까지 살짝 들여다보았다. 원칙은 토스카니니처럼 엄격하게 양보하지 말되 지나치게 소나타 같은 형식에만 얽매이지 말고 감상했으면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자동차 소나타도 그간에 디자인이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지 돌아보라고 하며.
월요일 새벽, 일주일의 일정을 살펴본다. 지난주와 같은 재현부의 소나타가 될지 다른 변주를 어떻게 해볼지 생각에 잠겼다. 여름휴가 시즌도 코로나 여파로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하지 못한다.
여름휴가를 울릉도로 갈까 생각해본다. 그것도 하고많은 날 중에 일기가 고르지 않은 여름에. 풍랑에 발이 묶여 계획된 소나타가 완성되지 못하고 론도로 늘어지면 어떡할지 걱정이 스쳐간다. 인생은 때로 계획이 틀어져도 그 틀어진 상태에서 출발하면 되지 않을까. 아마 대 작곡가의 클래식처럼 절묘하게 프레이즈를 배치한다면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인생은 가끔 우연이 준 선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은 아닐까.
무한반복의 소나타를 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