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선으로 보고 해석하는지 같은 현상도 관점에 따라 다르다. 예술가의 눈에는 초등학생의 서툰 그림에서 피카소가 보일지도 모른다.
예술의 전당 어딘가에서 초등학생 그림의 전시를 둘러볼 때 피카소 그림이 연상되었던 경험이 있다. 초등학생이 어떤 관점으로 인물을 묘사했을까. 아마 실물과 유사하게 그리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삐뚤어진 인물화에 선생님도 본인도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눈으로 본다면 눈, 코, 잎이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가 놀랄 모습으로도 보인다.
탄탄한 데생의 기초, 사진과도 같은 정밀화를 그릴 수도 있는 솜씨를 가졌지만 그 차원을 넘어서 생각할 수 있는 거장 피카소는 말한다. 세상을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예술이 된다고.
극단은 서로 통할 수 있다. 가장 텅 빈 마음은 집착으로 꽉 찬 마음과 유사한 행동을 낳을 수도 있다. 기본이 안돼서 삐뚤 빼둘 그리다가 흉내만 낸 그림들에 예술의 자격을 부여하고 피카소의 모습을 읽거나 일상의 소소함에서 시구를 떠올리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 아닐까.
<죽은 시인의 사회>로 잘 알려진 호주 출신 피터 웨어 김독의 영화 <그린카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반열에 들어선 제라르 드파르디유의 명연기가 볼만하다.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제라르 드파리디유가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와 시 낭송이 예술이기에 음미해본다.
Once I heard the sound of the wind in the trees.
나무들에 이는 바람소리를 들었네.
Once I heard the sound of the laughter of children.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네.
And I wept warm salted tears for the lost trees.
사라진 나무들을 위해 뜨겁고 쓰라린 눈물을 흘렸네.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onto the trees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 놀게 하고
and I will give them hope.
그들에게 희망을 주리라.
But there are no trees for the poor lost children.
그러나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나무가 없다네.
아마도 이런 마음과 눈이 있다면 한 줄의 시와 악상은 저절로 흘러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