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라면 자신이 기껏 고민한 문제들을 이미 해결해 놓은 선행연구가 발견되어 다소 실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건 내 독창적인 생각이고 기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알고 보면 지구 상의 누군가가 그런 일들을 꾸미고 벌여놓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 리가 없다.
독창성은 참 멋진 말일 수도 있지만 쉽지는 않다. 우리 사피엔스들의 두뇌 용량은 대개 비슷하다. 오리지널이라고 떠드는 데시벨이 높아서 인정받거나 권위를 얻은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어떤 것이 진정한 시초인지 헛갈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예술가의 일은 오리지널에의 도전이 아닐까. 도전의 수위와 방법은 헌법에 기록된 것일까. 그것은 누가 정하는 룰일까. 그런 고민 속에 창의성의 경계와 예술의 영역이 숨어있을 것이다.
알프레드 레싱의 예술에 대한 관점을 보면 제법 예술의 경계선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역사가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술가들이 아름다운 그림이나 시, 교향곡 등을 만드는 데만 골몰했다면, 미학적 즐거움을 주는 예술 작품의 창조 가능성은 얼마 가지 않아 바닥났을 것이다. 우리는 우아한 그림들을 아마 앞으로도 수없이 접하겠지만, 그 그림들이 조금씩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금세 질려버릴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아름다운 작품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름다우면서도 독창적인(original) 작품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이런 독창성을 발휘하는 데 성공하면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대단하게 평가하는데, 이것은 그 작품들이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술가와 감상자 누구에게도 알려지거나 탐사된 적 없는 미의 세계를 열어 보여주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 하이든, 괴테와 같은 사람들이 위대한 것은 그들의 작품이 탁월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창조적 독창성이 다른 예술가들에게 늘 영감을 주고, 그 예술가들을 통해 예술사를 새롭고 유의미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인 가요?> 아이젤 위버턴 저, 박준영 옮김 p.110-111
자신의 대변을 캔에 담아서 작품이라고 파는 사람, 자신의 피를 유리병에 넣어서 전시하고 변기통을 떼어다 작품이라고 전시하는 사람들도 예술가라고 한다. 현대 개념미술의 세계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용인할지는 모르겠다.
미켈란젤로도 백남준이 나체의 첼리스트 샬럿 무어만을 껴안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정도는 이해해도 아마도 중국의 어떤 작가가 전위예술이랍시고 죽은 아기를 먹는 장면을 본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른다. 아마도 예술이 아니라 제멋대로 된 사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천장화를 그리느라 몇 년 며칠을 꼬박 천장에 붙어살다시피 한 세월을 통탄스러워할지도 모른다.
이제 예술가의 범위를 좀 넓혀보자면 영역을 막론하고 아름다움과 거부감, 나아가서는 때론 혐오감 사이에서 독창적인 몸짓으로 어떤 진보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직업으로 보면 어떨까. 1980년대와 90년대의 한국에서는 에로티시즘 문학의 수위가 지나쳤는지 마광수 교수도 "선을 넘은 녀석"으로 직장에서 잘렸다. 시간을 지금으로 돌리면 마교수를 측은하게 보는 시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독일 장교가 만약 음악을 모르는 호모 에스테우스가 아니었다면 그 피아니스트는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술을 보는 눈은 때로 엄청난 부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전쟁통에서 생사를 가르기도 한 것이다. 왜구들도 도공 심수관은 납치해서 대대로 자신들을 위해 도자기를 구울 것을 주문한 호모 에스테우스이긴 마찬가지였다.
때로 예술은 시대를 넘어 새롭게 재발견되기도 한다. 음유시인 밥 딜런의 음악을 재발견한 뒤 음반으로 발매해 30여 년 만에 빌보드 1위에 오르는 개가를 올리게 한 사람은 음반 기획자가 아닌 스티브 잡스였다.
잡스는 인문학과 과학의 교차로에서 아이폰을 만들었다며 즐겨 말하듯이 융합형 인간이자 심미안이 최극단에 있는 호모 에스테우스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여러 장치들을 연결하는 선도 보인다고 생각하고 미적으로 정돈된 상태여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모든 것에 심미적인 시선을 들이대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들들 볶았던 것도 그의 수명이 길지 않았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잡스는 그 심미안으로 멀고도 험한 오리지널의 길을 찾았기에 대박을 일굴 수도 있었지만 삶 자체는 힘든 여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당장 오리지널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거장의 그림자를 밟으며 후일을 도모해보면 어떨까.
고흐는 밀레를 흉내 내다 자신의 화풍을 찾았다. 베토벤도 하이든이 닦아놓은 교향곡의 넓은 도로가 없었다면 그를 넘어서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피카소는 "평범한 사람은 베끼고 천재는 훔친다" 고 했다. 아마 피카소도 아이들의 학예회 그림을 보다가 어떤 생각을 훔쳤을지도 모른다. 모방과 훔치는 것 사이에서 미적인 신세계를 부단히 도모하는 호모 에스테우스를 예술가라는 직업으로 정의하면 어떨까. 예술가 앞에 '진정한'이라는 말을 붙이면 직업 앞에는 '극한'이라는 말이 붙어야 마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