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된 '생각의 예술'을 생각했다.
우리가 배우고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단순히 그 사실을 머리로 이해한다는 것과 그것을 응용해 자기 것으로 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등장한다. 주로 그 당시 여성들처럼 집에서 공부하고 어린 시절 학교 공부를 못했다. 오빠들은 모두 대학을 보내고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울프는 집에서 가정교사에 의존한 공부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케임브리지를 나온 지적 엘리트지만 평론에는 자질을 보여도 상상력이 동반되는 창작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음악, 연극, 오페라 같은 분야에 관심을 두고 감정적인 세계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멀리했다.
이미 당시 지적인 거인이라 할 울프의 아버지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오히려 세상에 빛을 발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분석에는 능해도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나 소설은 결코 쓸 수 없었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머리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창조적인 일에는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했고, 피카소는 예술은 사람들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거짓말이라는 멋진 말을 했다. 정교한 이성으로는 결코 예술이라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 역시 엄밀하게 말해 작가가 상상해낸 합법적인 거짓말이 아닌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당연할지 몰라도 과제가 과중하거나 심한 지적 노동, 암기량이 수반되면 불편해한다. 잘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근원에 대한 의문보다 시간을 보내고 적당히 학점을 따가면 된다는 생각이 이미 마음속을 지배한다. 근본을 캐묻기 전에 기계적으로 암기하며 시험이나 과제를 성실히 이행하는 유형도 있다. 드물게는 그런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공부를 거의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포기가 아니면 곤란하다. 모두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대한 학자들이나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 가운데는 학교 공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거나 낙제생도 있다. 처칠이나 에디슨이 언뜻 떠오른다.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한 위인들이 결코 명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교수들이 정해진 루틴으로 일정한 지식을 스푼으로 떠먹여 주고, 학생들의 관심사나 처한 여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원 웨이 커뮤니케이션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일정한 지식을 나열하고 그것을 암기하고 시험에서 토해내는 방식의 교육으로는 스티브 잡스나 버지니아 울프,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의 상상력을 길러주기 힘들다.
버지니아 울프의 짧은 삶과 문학은 당시로서는 일제 식민지의 한 무명 시인이었던 박인환이 알고 그녀의 정서를 시에 실었다. 그렇지만 그녀 아버지의 이름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 버지니아 울프, 전혜린, 박인환 같은 이의 짧은 삶에는 세상의 루틴, 교묘한 이중성에 몸부림치는 지식인의 자의식과 자기 연민이 스며있다. 이들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보기엔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인생을 무한정 늘어뜨릴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틀에 박힌 사람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쉬이 쓸 수 없고 예술에 감동하기 쉽지 않다. 시는 어떤 면에서 맞춤법과 이성을 넘어선 논리의 비약이고 일탈이다. 생각의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작품과 문학을 가까이할 필요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목마와 숙녀를 음미해보자. 가을바람이 머리카락을 찰랑거리게 하는 호젓한 산책로 벤치나 카페에서 이 시를 읽을 때 당신의 상상력이 자극된다면 당신을 시를 즐길 자격이 있다.
목마와 숙녀
- 박 인 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 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아마 천재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은 의붓오빠에게 당한 성폭행의 상처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의 소설에는 삶의 연민과 무의미성 같은 심오한 사색이 깃든 명문들이 곳곳에 보인다.
'인간이란 참으로 바보로구나! '하고 그녀는 빅토리아가(街)를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렇게 사랑하고 또한 인생을 그렇게 상상하고는 인생을 자기의 주위에 쌓아 올리고 또 허물어뜨리며 매 순간 쉴 사이 없이 새로이 창조하려고 하는 것인지 대체 누가 알겠는가.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한 몰골의 여자들, 현관 계단에 정말 실망 낙담하여 쪼그리고 앉아 있는 불쌍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누추한 인생들(이들의 몰락에 축배를 들자!) 이들 역시 우리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중에서
생각의 예술가, 버지니아 울프와 박인환 모두 30대에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지만 그들의 작품은 오래 살아있다. 작품을 다시 읽으며 두 사람을 애도한다. 아침의 가을바람은 삶의 활력을 주기에 젊은 죽음이 더 쓸쓸하고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