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들은 달이 이지러진 것을 ‘드리밍’(dreaming)이라 부릅니다. 보름달의 꿈을 가진 달이기에 그렇겠지요. 인생도 마찬가지로 이지러지고 상처가 났기에 항상 만월(滿月)의 꿈을 꿀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예술도 어떤 면에서는 이지러진 가운데서도 희망을 그리는 끈질긴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듯한 삶 속에서도 예술은 잉태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많은 예술가들은 지독하게 이지러진 결핍 속에 허덕이면서 만월의 꿈을 키웠습니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고흐 모두가 마흔을 넘기지 못한 삶이었습니다. 사랑은 비틀거렸고 집의 쌀독이 비어있었어도 예술을 향한 마음만은 가득했습니다. 현대의 예술가 중에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작품을 펼치지만 그런 경우는 예술 직업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교수로 혹은 든든한 후원자의 지원을 배경으로 결핍을 모르는 삶이 어떤 절실함을 잉태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그런 분들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발표하고 있지만요.
예술 직업인들보다 예술가들의 삶은 그 자체가 많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술을 위한 순교자 같은 삶이 우리를 숙연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가 완전치 않은 가운데 불멸의 교향곡을 만든 베토벤의 음악은 언제나 내 고요의 시간을 채웁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만나게 되니까요. 낮은 볼륨의 클래식 음악과 노트북이라는 원고지가 있는 새벽은 고요에 내 마음을 헹구기 좋은 시간입니다. 이 특별한 고요는 내 정신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백무산 시인의 시 “고요에 헹구지 않으면” 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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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깊은 잠을 자야 하는 이유는
몸을 떠난 고요를 불러들일 수 있기에
잠은 하루치 노동을 지우고
고요를 불러들일 수 있기에
해가 뜨면 내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육즙 빠져 쭈그렁바가지가 딘 시간이
고요에 무르익어야 내일이 뜨기에
시간을 고요에 헹구지 않으면 오늘을 반복할 뿐
내일의 다른 시간이 뜨지 않기에
늘 바쁘게 삶의 궤도를 돌다가 최근 몸을 다친 분이 마음은 다치지 않고 계획한 트랙의 삶 속으로 조속히 들어오기를 기원합니다. 자신을 세상의 분주함에서 잠시 놓아서 고요 속에 마음을 헹구는 시간이 되었으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의 고요를 지나면 기다리고 있을 많은 삶의 열매를 위해 정지의 시간을 무사히 통과했으면 합니다. 백무산 시인의 말처럼 씨앗은 자신을 떠나 고요를 통과해야 자신을 불러낼 수 있기에.
되도록이면 그 고요의 시간이 짧기를 바라는 건 쾌유를 비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