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예술은 외로운 일

by 호림

예술 계통의 직업도 밥벌이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예술가는 일반 직업인과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역한 인식이 있다.

어린 시절 힘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후배가 있다. 무대를 같이 꾸미는 즐거움, 그 설렘만으로도 더 이상의 행복이 없을 것만 같던 시절이 었었다.


후배는 그때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떠나 길고 먼 유학의 여정을 마치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 대학교나 음악 관련 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추천서를 부탁하기에 내 명함이 무슨 도움이 되냐고 핀잔을 주며 오래간만에 막걸리 한 잔 하자며 추억을 회고했다. 영혼을 팔아 취업하는 시대에 지푸라기를 잡는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기껏해야 예술은 외로운 일 아니냐며 어디서 들은 풍월을 읊었다.

92세까지 장수한 피카소는 그의 화실에 출근하듯 하면서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부와 명예를 한껏 누리면서. 반면에 고흐나 고갱, 이중섭이나 슈베르트같이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거목들도 있었다. 이런 예술가들처럼 예술의 순교자가 되라고 후배에게 권할 자격은 없다. 피카소처럼 왕관을 쓰고 걸어가는 길이 아닌 험로를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실크로드가 깔리면 좋겠다고 걱정해주는 것이 선배의 일일 것이다.


20세기에도 세속을 저버린 듯한 초연한 삶으로 완전한 인간이란 평을 받았던 사람들이 종종 있다.

언어철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 재벌 집안의 2세였지만 유산을 다른 형제들에게 모두 양보했다. 대신 그는 교사, 교수 같은 직업을 가지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는 마치 인간의 정신을 가다듬는 학문이라고 할 철학을 위한 순교자처럼 보인다.


그 수많은 전기와 평전이 따분하면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그 풋풋한 순수와 약자에 대한 무한애정을 지닌 한 청년을 만날 수 있다. 콧수염과 베레모가 잘 어울리는 미남 청년은 짧은 인생을 혁명에 바쳤다. 아르헨티나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의 길로 탄탄대로를 걸어가던 청년은 모터사이클 여행에서 가난과 학정에 신음하는 민초들을 보고 투사의 길로 들어선다.


한 때 체 게바라는 세계 젊은이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게바라의 얼굴이 나온 T셔츠를 걸친 청년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돌아봐도 록 스타가 아닌 쪽에서 그토록 세계의 젊은이가 열광하며 우상으로 삼던 청년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헤밍웨이를 청년들이 좋아했던 것도 유사한 이유가 아닐까. 노벨상의 유명세에 멋진 외모, 구애하는 많은 여성들... 안락한 소파에서 길게 행복을 늘어뜨린 삶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헤밍웨이를 올려다보는 건 안락과 타협하지 않은 작가정신이 남긴 울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극한을 맛보려든 듯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어 부상도 당하며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쓴 헤밍웨이는 하드 보일드체라는 그의 문체처럼 지성과 문명으로 포장된 세계를 속임수로 보는 배짱을 지닌 사나이였다. 가혹한 현실에 의연히 맞섰다가 패배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힘차게 묘사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가이기도 하지만.

헤밍웨이의 언어에서 극한의 상황에도 패배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 노인과 바다 중에서


세상은 많은 사람을 부러뜨리고

다음엔 그 많은 사람은 부서진 곳에서 강해진다.

Ther breaks everyone and afterward many are strong at the broken places

- 무기여 잘 있거라 중에서

20세기 아니 역사상 인류 최대 비극의 하나인 아우슈비츠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나온 화학자가 있다. 작가로 변신한 이탈리아인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에서 나치의 만행을 증언한 바 있다. 그는 남미에 정착해 살다 자살로 왜 생을 마감했을까. 더 이상 성취하고 이룰 게 없는 노년의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 부부가 같이 자살했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생명만 보장된다면 수용소의 처절한 하루가 나른한 하품만 있는 하루보다 차라리 삶의 밀도가 있는 진정한 삶이라고 한다면 어폐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프리모 레비는 작가적 자극이 없는 삶을 연장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짐작이다.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환경을 견디며 그렇게 혹독한 고생 끝에 삶을 얻어서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레비가 남긴 그 큰 물음표가 울림을 남긴다.

헤어지며 행운을 기원하는 덕담과 함께 후배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포도주 한 잔의 힘을 빌어 기껏해야 쓰잘데 없는 그 외로운 일을 왜 직업으로 삼느냐는 조크와 함께.


내가 후배에게 했던 말은 실은 수염이 잘 어울리는 어떤 멋진 백인 신사에게서 배운 것이다. "기껏해야 글쓰기는 외로운 일"이라고 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란 사내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