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평을 거름으로

베이컨의 두 얼굴

by 호림

도박중독자에 미술대학 문턱에도 가지 못했던 화가, 그렇지만 20세기 가장 중요한 화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화가가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예술가 중에서도 예술가로 뒤샹의 모습을 떠올리며 같이 연상되는 화가다. 25살의 청년 베이컨은 피카소를 우상처럼 여기며 열심히 그리고 또 그린 그림으로 런던의 트랜지션 갤러리에서 꿈에 그리던 개인전을 열었다. 그렇지만 그에게 쏟아진 혹평이 그를 좌절케 했다. '유치한 구도'를 흠잡기도 하고 "캔버스와 종이 위의 배설물에 불과"하다는 유력지 데일리 메일의 독기 서린 악평은 그가 더 이상 화가의 삶을 연장할 이유를 찾기 힘들게 만들 정도였다. 좌절을 넘어 아예 그림 그리는 일을 접게 만들었다.


엄격한 청교도적 분위기의 집에서 추방된 동성애자에 떠돌이 도박꾼, 거기에 실패한 화가라는 달갑지 않은 훈장까지 더해져 뒷골목을 전전했을 암흑의 시간은 예술가에겐 훌륭한 거름이 되었다.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보는 이에게 충격파를 던지는 작품으로 예술가 베이컨을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25세의 첫 개인전을 처참히 실패한 후 자신의 그림을 갈기 갈지 찢어서 없앤 청년의 인생이 극적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37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1971년에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예술 잡지 <코네상스 데 자르>는 가장 중요한 생존 화가 10인의 첫손가락에 베이컨의 이름을 올렸다. 당시 생존했던 피카소의 이름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신창이로 살아가던 화가, 정확히 도박꾼에 구원의 동아줄을 내민 사람은 동성애자였다. 베이컨과 사랑에 빠진 에릭 홀이라는 독지가는 그를 조건 없이 후원했다. 그 결과 <십자가 책형을 위한 세 개의 습작>은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 전시되어 중요한 화가로 세계가 베이컨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세 자녀를 둔 에릭 홀은 당시 동성애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숨기며 베이컨을 후원했는데 테이트 갤러리가 완강히 거부하는 베이컨의 작품을 전시하게 하는 데에도 힘을 썼다.

혹평과 금지된 사랑은 한 예술가에게는 대단한 거름이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과 동명의 이 화가는 혈통이 닿아 있는 집안이다. 화가 베이컨은 아마도 이런 정도로 말했을지도 모른다. 철학자 베이컨의 말을 비틀어서.


"아는 것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 아무것에도 영향받지 않는 당신 스스로만의 방식으로 그려라. 그러면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 것이다. 설사 인생이라는 고행길이 힘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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