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의 좌절과 희망

행운도 불행도 혼자 오지 않는다

by 호림

백작과 부인은 자신의 드넓은 영지를 말 달리며 자신의 혈통을 이어갈 사내아이가 태어나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자라면서 아이는 왜소증에 걸려 초등학생의 몸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다.


'물랭루즈', '요절한 천재' 같은 말이 따라붙는 화가 로트렉은 1864년 남프랑스 어느 고성에서 앙리 마리 레몽 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라는 긴 이름을 얻으며 백작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상아와 금은으로 장식된 장난감에 매사냥을 같이 나설 준마까지 준비된 귀공자는 불행히도 말을 탈 수 없는 운명의 약골로 잔병치레를 하더니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추었다. 자라면서 낙상을 두 차례나 입었고 그때마다 골절을 당했기에 부모는 귀족들의 근친혼이 유전에 미친 악영향을 사고의 후유증으로 치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버지 나는 커서 튼튼한 말을 그리겠어요." 백작에게 아들은 기특한 포부를 얘기하기도 했지만, 이내 그것은 물거품이 된 꿈을 그리려는 것임을 온 가족이 알게 된다. 신체가 부실한 창백한 귀족으로 시골에서 전원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의 삶은 소년의 우울만을 더할 뿐이기에 파리에서 그는 날개를 달았다. 돈 잘 쓰는 귀족의 아들은 환영받았고 독특한 화풍으로 그 세계를 넓혀갔다. 사교계의 한 자리를 차지한 로트렉을 화가로 주목받게 만든 것은 물랭루즈의 상업 포스터였다.


우아한 귀족의 아들이 사창가를 기웃거리고 상업 미술에 눈을 돌리다니. 그렇지만 파리의 사교계의 우등생은

어머니 아넬 백작 부인 싸늘한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어머니로서 눈물로 키운 자식이 그나마 마뜩지 않은 직업임에도 귀족 미술의 정통 문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그림이었을 뿐이었다.

애지중지한 금수저 아들에 대해 질문했을 때 "사망한 지금도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살아생전 미숙하고 부적절하고 뻔뻔한 낙서를 모아 둔 것이라던 것을 이제 와서 새삼 찬양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는 알퐁스 백작이였다.


서른여섯에 천재는 이렇게 가족의 철저한 외면 속에 후세의 너그러운 평을 기다리며 요절의 법칙을 거스르지 못했다. 아마도 로트랙의 부모는 싸늘하게 평하면서도 자식의 가혹한 운명을 바라보며 속으로는 누구보다 더 진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혹평을 거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