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라의 대표작은 어디에
어떤 이들은 내 그림 속에서 시를 보지만 난 오직 과학이 보인다.
- 조르주 피에르 쇠라
작업 과정이 일필휘지라는 말처럼 그림을 쉽게 그리는 사람도 있고 정성스러움이 고행에 가까운 화가도 있다.
궁극적으로 회화는 빛의 조화가 우리 망막을 통과할 때의 느낌이기에 그 느낌에 어떤 재료로 호소하는가에 따라 예술가의 개성이 보인다.
인상파는 빛이 비치는 순간의 느낌을 포착하려는 노력이었는데, 이 인상파의 한계는 너무 세밀한 구도나 형상미를 표현하는데 부족하다는 데서 자신의 독특한 점묘법을 고안한 이가 조르주 피에르 쇠라다. 쇠라의 대표작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점묘법으로 색의 섞임을 방지하고 보색 효과를 과학적으로 표현해 그 당시 이미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의 경우도 60여 번의 밑그림 스케치와 현장 답사를 통해 완벽히 빛의 조화를 재현하고자 한 쇠라의 노력이 보인다. 문제는 캔버스에 수십만 개의 점을 채워 넣는 일이 엄청난 수공이 들어가는 일이라 작업 과정이 거의 살인적인 노력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쇠라는 강변의 풀이 자라면 전체적인 구도나 색이 달라지니 풀을 베고서 그림을 그릴 정도로 깨알 같은 정밀함을 추구한 화가였다.
늘 양복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차려입었던 쇠라는 그림 또한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색감과 구도를 중시했다. 영국의 평론가 로저 엘리엇 프라이는 이런 쇠라를 두고 "극도의 감수성과 탐욕스러운 지적 정열의 기발한 결합"이라고 할 정도였다.
쇠라는 이 독특한 점묘법에 호의적인 반응이 따르자 내심 불안해졌다. 예술은 독창성이 생명인데 너도 나도 점묘법으로 작업해 대세가 되면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렇지만 쇠라의 생각은 기우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따라 하기는 너무 힘든 방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891년 갓 32세에 채 빛을 발하지 못한 미래의 별은 디프테리아로 사망하고 독특한 화풍도 대가 끊기듯 했다. 다빈치의 원근법이나 스푸마토 기법 같은 회화사의 큰 물줄기는 천재의 눈에 비친 과학에서 나온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왜소한 이름의 쇠라의 점묘법 또한 예술에 과학을 입히려는 작은 물줄기와 연결된 것은 아닐까.
쇠라의 유족들은 <그랑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프랑스 정부에 기부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 이후 쇠라 사망 후 30년 만에 시카고의 컬렉터 프레드릭 클레이 바틀넷이 이 그림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2만 달러에 사들여 대서양을 건너갔다. 지금은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 소중히 보관돼 있는 이 그림을 한 때 프랑스 정부가 고액을 지불하고 모셔가려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제국주의의 유산으로 루브르에 각국의 국보급 문화재를 넘치게 보유한 프랑스도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다.
뉴욕 MoMA에 있는 이중섭의 은지화는 가난한 조국에서 알아봐 주는 이가 없어 미국인 독지가가 뉴욕으로 모셔간 경우다. 왕오천축국전이나 우리 선조들의 남긴 유물들이 이국에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국력의 크기에 걸맞은 반환 노력은 문화의 광복을 바라는 후손들의 몫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