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라는 유령
창작의 불을 밝히는 예술가들에게
스마트폰이나 각종 게임이 활성화되기 전의 어릴 때가 생각난다. 명절이면 윷놀이나 화투로 일가친지들이 모여서 오락을 하던 기억은 여느 한국인 가정의 보편적 풍경이다. 제법 많은 친지들이 와서 화투가 모자란다고 해서 어린 마음에 미술 실습용으로 가지고 있던 도화지를 잘라서 화투 그림을 그려서 어른들께 드렸다. 화투를 던져서 담요에 부딪히는 쾌감이 없는데 무슨 재미로 했을까 싶지만 초등학생이 그림솜씨가 좋고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들어서인지 이후 미술 시간이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재능은 무엇일까. 종이 한 장 차이의 소질이 평생의 직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계기로 동기부여가 될 때 끝까지 해내는 힘이 재능을 이기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나 작가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궁극의 기질"이 아닐까. 현실에 부단히 물음표를 던지고 사물들과 인간들의 관계망에 기발한 또는 기이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능력,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꿈틀거리는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는 힘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리라.
마르셀 뒤샹은 자칭 천재라며 뻐기던 살바토르 달리와도 가깝게 지냈지만 천재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뒤샹은 천재는 사후에나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젊은 예술가들은 천재가 되길 원하는지 생계를 꾸려나가길 원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뒤샹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천재가 너무 빨리 성공하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오늘날 50명의 천재가 있지만 거의 대부분 자신의 정체성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될 것입니다.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그는 무수한 덫을 통과해야 합니다. 천재는 흔해 빠졌고 그들은 재능을 다 소진하거나 자살하거나 무대 위에서 으스대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그저 환상, 반사된 이미지일 뿐입니다. 그냥 신기루 같은 아름다움에 만족합시다. 그것이 전부 이기 때문입니다.
-<뒤샹 딕셔너리> 토마스 기르스트 저,
주은영 역. P.104
뒤샹다운 냉소와 날카로움이 빛나는 말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창조적인 사람의 성향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꼽았다.
O 해답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한다.
O 어느 정도의 위험을 혁신과정의 일부로 감수하고
실패를 수용한다.
O 현상 유지를 거부하고 새롭게 도전하며 그때
직면하게 되는 장애물에 과감하게 맞선다.
O 자신이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해도 그 모호한 상태를 이겨낸다.
O 자신의 기술이나 지식이 정체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성을 연마한다.
- <아이디오는 어떻게 디자인하는가>
데비비드 켈리, 톰 켈리 저. P.118-119
스턴버그는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가장 큰 천재의 무기로 보았다. 백열전구를 위해 무려 천 번을 실패하고도 그 실패한 실험을 성공으로 가는 과정으로 보았던 에디슨, 아예 기존의 문법을 갈아엎고 신제품에 과대망상적일 정도로 매달린 스티브 잡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매달리다시피 해 4년을 꼬박 씨름한 미켈란젤로 ...... 천재의 얼굴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최근에 접한 한 작가의 이야기는 재능을 이야기하기 전에 숭고할 정도의 집착과 인내 같은 개념들이 머리를 스쳤고 '열심히'라는 용어를 함부로 입에 올리는 일을 삼가게 만들었다. 청소 노동자이자 작가인 마이아 에켈뢰브의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에 담긴 자전적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도 재능이라는 유령을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혼 후 청소라는 힘들고 고단한 노동으로 다섯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 초등학교 졸업 후 인연이 끊어졌던 학교를 다시 늦은 다니는 억척스러움은 그래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 부단히 읽고 썼던 건 재능을 넘어 숭고한 목적의식을 읽게 한다. 다들 자신 인생이 제일 힘들고, 다들 내 자식 같은 말썽꾸러기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켈뢰브 앞에 서면 패배를 인정할 처지가 될 것이다.
에켈뢰브는 성년이 다 됐어도 끊임없이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실직해 엄마의 집으로 돌아오는 자식들을 챙기며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건물 청소를 다니고, 집안일을 했다. 주경야독은 기본이다. 학교에서 스웨덴어 문법과 역사와 의회 정치를 배우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와 읽고 글을 썼다. 책이 있다면 고치지 못할 우울증은 없다고 했다. 돈이 없어 휴가는 못 가도 책을 통해 “티베트에서 기름등잔의 연기를 느끼고, 라싸에서 기도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를 듣고, 중국의 동굴에서 거주하고, 미국과 아시아의 대도시 빈민가에서 비좁게 살았다”고도 했다.
여름에는 손발이 퉁퉁 붓고, 겨울에는 손이 터서 제대로 펜도 잡을 수 없었다. 타자기는 언감생심이기에 자신이 청소를 맡은 사무실의 타자기를 몰래 쓰기 위해 1시간 앞당겨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벽 3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고 고백하는 대목에 이르면 연민의 마음이 일어나 눈시울을 붉힐 수도 있다. 잘 정리된 아늑한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에켈뢰브는 “똑똑한 머리와 날카로운 팔꿈치”로 자기보다 약한 자를 밀치고 끝없이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딱하게 여기라고 동정을 구걸하지는 않았다. 다만 절대로 꺾을 수 없는 의지 하나만으로 얼어붙은 손으로 남의 타자기 앞에서 글을 쓰려는 사람 앞에 어디 감히 서푼짜리 재능을 말하느냐고 쏘아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