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없다면 엉덩이로

예술가의 성실성

by 호림

천재성을 얘기하지만 예술가도 꾸준히 작품을 내놓으며 성실성을 보이는 것은 하나의 미덕일 수 있다. 그 기준에서 보면 르느와르가 단연 탁월하다. 르느와르는 평생 6,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림에 입문해서 거의 3일에 한 작품을 그렸다는 얘기다.


그것도 쓱싹 붓질 한 번으로 끝났음직한 개념미술 계통의 추상화나 페인트를 들이붓거나 해서 정밀한 수작업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던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이 빛의 흐름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대단한 정성이 들어갔을 법한 작품들이다.

1990년 5월 17일 뉴욕의 경매에서 그의 작품 <롤랭드 라 갈라트>를 일본인 컬렉터 료에이 사이토가 당시로서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7,800만 달러에 구입했다. 기계적인 다작만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즐겨 그린 르느와르의 그림을 사랑할 만한 요소가 많았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의 한 명이 된 것이다. 르느와르는 당시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는 술자리도 그다지 즐기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과 화실에서 보냈다고 한다.


피카소도 다작으로 90여 세를 살며 화실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크고 작은 1만 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반 고흐가 남긴 2,000여 점도 작품 수 면에서 장수한 화가들에 뒤지지 않았다.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도 600여 곡을 남겼다. 모두가 30대에 단명한 예술가들이었기에 대단한 다작이었다.


작품 모두가 균일한 걸작은 아닌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작품을 위한 구상이나 작업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느와르는 말년에 휠체어에 앉아서 일할 정도로 관절염이 심했고, 손을 쓰지 못할 정도여서 주위에서 걱정을 하면 "손이 없다면 엉덩이로라도 그려야지" 하면서 끊임없는 창작의욕을 보였다. 이쯤 되면 어떤 천재성도 르느와르의 성실성을 이길 재간은 없을 듯하다.


사실 우리가 즐기는 예술 작품의 상당수는 예술가의 머리에 단박에 스친 영감보다는 엉덩이를 책상에 붙이고 오선지와 씨름했던 시간과 작업실에서의 부단한 붓질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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