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수명

슈퍼 노년 이야기

by 호림

이수인 작곡가가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잘 알려진 가곡 <내 마음의 강물>이나 동요 <앞으로 앞으로> 같은 무수한 곡을 남기고 82세에 작고했습니다. 정수 시대인 요즘 치고는 아쉬운 나이일 수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작곡가나 지휘자들은 장수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휘자는 장수 직군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카라얀, 토스카니니, 게오르그 솔티, 로린 마젤 같은 지휘자는 비교적 장수하며 정년을 잊은 듯 여든을 넘겨서도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이젠 주변을 둘러보면 구순 노인들이 팔팔하게 활동하는 이야기도 신기한 일이 아닌 장수시대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옹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강연을 한다고 합니다. 대형 출판사의 오너 한분은 90대 중반인데도 계단을 오를 때 50대인 선배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라고 합니다. 한의원을 운영하는 분은 아흔을 훌쩍 넘겨도 손자뻘 40대 직원들에게 일이 서툴면 그것도 기억 못 하냐며 총기를 꾸짖는다고 합니다.

불문학자이자 평론가인 황현산 선생은 생전에 나이 듦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대접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자기 일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소일거리가 아니라 본격적인 일로서 말이죠. 일이 있으면 노여움이 없어집니다. 결국은 자기중심이 있어야 남들한테 무시받거나 소외당한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되거든요. 제 경우는 다행히 번역과 주석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게 추하지 늙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확고한 전문성으로 영역을 확보한 경우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맞는 일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야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입니다.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이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멈추고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달릴지도 모릅니다. 학생 때는 취직하면 이 고달픈 학업에서 해방되고 직장을 다닐 때는 언젠가 은퇴하면 신천지가 펼쳐질 수 있다고 막연한 상상을 합니다. 정희진 선생의 말을 곱씹어보면 영원한 안식 같은 삶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베르디가 80세에 작곡한 오페라 <팔스타프>를 보고 피터 드러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르디에게서 완벽을 향한 의지를 배운 드러커는 93세에 <넥스트 소사이어티> 라는 역작을 쓸 수 있었습니다.


소소한 즐거움을 무한정 늘어뜨리는 것도 행복한 인생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선승의 화두와도 같은 인생의 의미를 찾고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해보려는 의지가 슈퍼 노년을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는 진부해진 명언이 생각납니다. 달리 말하면 예술가의 수명은 비록 짧을지 몰라도 위대한 작품의 생명은 영원하다는 말이겠지요. 모차르트, 고흐, 슈베르트는 30대에 죽었지만, 그들의 작품은 300년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90을 넘겼을 때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그 나이에 연습을 왜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도 실력이 하루하루 는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 수준의 나이라 아직 나이의 무게를 느낄 만큼 한가하지도 늙지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슈퍼 노년들이 주는 메시지는 가끔 내 어깻죽지를 세차게 내리치는 죽비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