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찬란한 유적과 문화를 간직한 이탈리아인들은 마냥 흡족해하고 새로운 도전에 소홀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시인 겸 소설가 필리포 마리네티(1876-1944)는 1909년 2월 20일 의미 있는 선언을 한다.
그는 동시대 이탈리아의 창의력이 고대 그리스 로마와 그리스 시대의 유산 같은 과거 황금기 예술의 압박에 가로막혀 있다고 생각해 여러 예술인들과 연명으로 미래주의 선언문을 발표한다. 세상을 말끔히 청소할 전쟁을 찬양하기도 한 미래파의 선언문은 자못 비장하다. 문장으로 명시한 글이었기에 지금까지의 어떤 예술 사조의 기치보다 더 강렬했다.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대개는 미래지향적인 몸짓이 하나의 흐름이나 사조를 만들었다.
회화가 대상을 똑같거나 유사하게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에서 상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자리매김시킨 것은 야수파의 마티스와 입체파의 피카소였다. 둘은 새로운 콘셉트로 회화예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갔다.
왜 시각 예술의 소재는 늘 캔버스에 유화인가? 거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화가는 평생을 붓질의 세련됨을 위해 수련하고, 조각가가 대리석을 아름답게 깎아내는 것만이 예술가의 일이 아니라고 선언한 이가 있었다. 새로운 재료를 무궁무진하게 쓸 수도 있고 예술가가 상상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과 이를 구현하는 방식은 열려있다고 본 것이다.
흔히 보는 소변기 조차도 레디 메이드 예술품이라며 사인을 천연덕스럽게 해 작품으로 출품했던 마르셸 뒤샹은 예술가 중의 예술가였다. 물감을 그저 캔버스에 들이부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물감이 그리는 연출하는 모양을 즐긴 잭슨 폴록 또한 새로움에 굶주린 혁신가이자 예술가였다.
적어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만들어낸 이들은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작품을 좀 더 세련되게 만드는 일은 장인의 일인지 몰라도 예술가의 일은 아니라고 보았다.
예술가라면 그 삶 조차도 예술이 되어야 한다. 뒤샹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창적인 삶을 스스로 살아냈다.
마리네티의 미래주의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면 예술은 기본적으로 전통을 흡수하기도 했고 일정 부분은 도전적인 파괴로 성숙해왔다. 마리네티는 무솔리니를 칭송하는 극단을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정치적인 곡예를 하기도 했지만 반달리즘과 같은 파괴적인 양상으로 가지는 않았기에 예술 혁신의 한 줄기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