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반지와 니벨룽겐의 반지

by 호림

바그너의 음악을 감상하다 소설 <반지의 제왕>이 눈에 들어온다.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과 그 상징성을 절묘하게 표현한 예술작품들은 많다. 그중에서 소설과 오페라에서 반지를 테마로 한다는 점에서 <반지의 제왕>과 <니벨룽겐의 반지>는 그 묵직한 상징성과 울림이 큰 작품이다.


바그너의 반지는 무한한 힘을 지닌 ‘니벨룽겐의 반지’에 대한 네 가지 에피소드를 한데 묶어서 구성한 것이다. 니벨룽겐은 독일 북부에 살았다는 난쟁이 종족을 칭한다. 이 니벨룽겐족은 막대한 황금과 보물을 모아놓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지키는 사람들이다. 황금 보물 중 가장 귀중한 것은 반지다. 반지를 차지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권세와 황금을 갖게 되지만, 반지를 꼈던 사람은 저주받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정치의 드라마틱한 현상들은 때로 이런 니벨룽겐의 반지를 연상케 한다.

철학적인 깊이가 대단한 음악가로 알려진 바그너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당시의 철학적 사고들을 담아내려 했다. 바그너가 <니벨룽의 반지>를 작곡할 때 그의 세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포이에르 바흐의 사상이었다. 신성한 것으로 보이는 속성들도 실은 인간적인 것이라는 지극히 유물론적인 포이에르 바흐의 사고는 바그너에게 깊은 감화를 주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상을 형성했다. 이러한 사고가 〈니벨룽겐의 반지>에 반영되었다.


〈라인의 황금〉편에서 신들은 고귀하고 선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성격과 욕망을 가졌고 신들의 탐욕스럽고 무능한 세계는 결국 인간들에 의해 파괴된다. 바그너는 중세의 신의 일방 통행적인 종교관을 벗어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를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어서 많은 이들은 바그너의 세계관을 아나키스트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권력의 강제와 질서보다는, 인간 본연의 사랑이 평화와 조화를 유지하게 해 준다는 믿음은 언제나 바그너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본다. 신이 만든 정교한 질서가 정당하지도 않고 위압적일 때 항거하는 순수한 인간의 일은 정당하기에 근대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이 거대한 반지 이야기를 짜 맞추기 위해 바그너는 그의 다른 어느 오페라에서 보다 스토리의 개연성과 통일성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각 오페라 연기자들은 그 행동 동기의 개성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저주', '반지', '칼' 등 고도의 상징성을 간직하고 있다.〈탄호이저> 나〈로엔그린> 같은 오페라와는 달리 바그너는 <니벨룽겐의 반지>에 아리아, 합창을 배제하는 대신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웅변적인 서사가 담긴 '무한선율'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작위적인 악곡의 종지, 악절 구분을 피하고 처음부터 각 막의 끝까지 연속적으로 선율이 흐르도록 했다. 바그너는 스스로 <니벨룽겐의 반지>를 자신의 오페라 <탄호이저>나 <로엔그린> 같은 작품과는 차별화해 음악극이라고 했다. 총 16시간에 달하는 이 음악극은 대개 4일에 걸쳐 공연되는 대작이다. 나처럼 언젠가 바그네리안의 오페라 성지이자 아지트인 바이로이트에서 이 대작을 감상하는 것은 많은 클래식 팬들의 로망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 인생의 장면들도 크고 작은 반지를 차지하고자 하는 아우성 같은 면이 있다. 그것이 절대반지가 될지 저주의 반지가 될지는 쉽게 짐작이 되지 않기에 한 줌 권력은 득이 되은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독이 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젠 식상해져 채널을 돌리게 되는 정치 뉴스는 니벨룽겐의 반지를 탐하는 무리들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 반지가 달콤한 권력의 반지인지 저주의 반지인지 잘 모르지만.


바그너의 장대한 선율로 새벽을 열었다.


(274) Richard Wagner - Ride of the Valkyries (Walkürenritt) 바그너: 발키리의 기행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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