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필연처럼 보이는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인연이 혼사로 연결되기도 하고, 대박 사업의 은인이 되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다. 예술계에도 숱한 인연들은 필연이 되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들기도 한다.
여류화가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수잔 발라동은 한때는 어려운 형편 때문에 모델 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10대 소녀였다. 말이 모델이지 당시는 화가의 모델 이상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직업이라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 발라동은 몽마르트르 언덕이나 화가의 작업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모델만은 아닌 적극적인 여인이었다. 툴루즈 로트렉에게 청혼을 하기도 했고, 한때는 당시 무명 음악가였던 에릭 사티의 연인이기도 했다. 모델일에 만족한 발라동이 아니었기에 화가 데뷔를 꿈꾸던 중 로트렉의 천거로 에드와르 드가의 제자로 그림을 공부해 화가로 데뷔한다. 남성의 누드를 과감하게 그리는가 하면 여성의 누드를 한갓 눈요기 정도로 아름답게 그리는 대신 뱃살이 드러나는 일반적인 소박한 모습으로 그리기도 해 화제가 되었다. 의식했던 그렇지 않았던 페미니즘의 선구자격으로 여성의 인권에 주목한 화가처럼 평가되기도 했다.
발라동의 경우 생계를 위한 우연한 모델 입문이 회화사에 남을 여류화가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앙리 마티스는 법학을 전공하고 고향의 법원에서 근무하던 20대 청년시절 맹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이때 옆의 환자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림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다. 퇴원 후 어머니가 캔버스와 물감을 사주었기에 붓을 들었다. 야수파의 거장은 이렇게 우연이 이끌어 탄생했다.
75세에 미국 시골 마음에서 자수를 하다 관절염으로 작업이 힘들어지자 가족들이 그림을 그려보라며 권유해 시작한 것이 늦깎이 화가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다 동네 바자회에 자신의 그림을 내놓았다. 그것도 아주 싼 가격에. 시골 마을을 여행하던 갤러리스트의 눈에 그 그림은 들어왔고 모든 그림을 싹쓸이해 구매한 이 갤러리스트는 할머니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가고 집에 있던 그림마저 다 사들였다. 나중에는 후원자를 자청해 캔버스와 물감을 들이밀다시피 하며 작업을 종용했다. 이 할머니는 89세에 개인 회고전을 열었고 101세까지 무려 1,600여 점의 그림을 그려 트루먼 대통령의 훈장도 받았다.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다.
역사의 가정처럼 인생에서 지난 일에 대한 가정은 무의미할 수 있다.
발라동이 모델일이 아닌 주점에서의 아르바이트를 택했다면,
마티스가 20대에 맹장염을 앓지 않고 그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어느 갤러리스트가 모지스 할머니가 사는 마을을 찾아 바자회에 놓인 싸구려 그림을 보지 않았다면......
'낙장불입'의 필연 같은 장면들도 실은 인연의 실타래가 이끌고 온 우연이라는 것을 가끔 잊곤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그것 만큼이나 포근한 슈만의 안단테 칸타빌레가 흐린 휴일을 감싸는 아침이다.
슈만과 클라라 또한 그 첫 만남은 우연이었을 것이다.
(295) Schumann, Piano Quartet in Eb Major, Op. 47, III. Andante cantabile, BCMF 2014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