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남태평양에서 온 편지

by 호림

예술사의 거인들은 흉내를 내서 아류가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것이 설사 실크로드로 가는 길이라도 기꺼이 독창적인 길로 가면서 사서 고생을 하며 자신만의 방식을 찾고자 했다. 특정한 유파를 자처하며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거부하고 외딴 방에서 혼자 고독 속에 작업을 이어간 이는 드물지 않았다.


폴 세잔은 파리를 떠나 고향 액상프로방스에 머물며 자연을 그만의 방식으로 그려 현대회화의 중요한 이정표를 만든 거인이 되었다. 생각과 공간을 모두 파리 주류 화가들과 단절하고 아예 외딴섬으로 떠난 고갱의 경우는 세잔보다도 더 극도의 단절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추구한 경우다. 가난과 고독, 향수병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은 캔버스와 물감이었다. 그의 유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손이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유리창을 깨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난도 아무것도 아니다. 금지된 모든 것을 시도하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과장하면 어떤가. 새로 배우고 알게 되면 또 배워야 한다. 우스꽝스러운 것을 창조한다고 해도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이젤 앞에서 화가는 과거의 노예가 되어서도 현재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

1897년 타이티섬의 화가에게 통한의 비보가 날아왔다. 그의 딸 알린이 폐렴으로 사망한 것이다. 뼛속 깊이 몰려드는 슬픔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알코올 중독, 매독, 다리의 외상에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파리에 그림을 보내보지만 호평을 받고 구매자가 줄을 서는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늘어나는 빚에 정신 또한 더 이상 버텨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 유작으로 삼고자 한 작품을 사력을 다해 그렸고 그림을 완성한 후에 모아둔 비소를 삼겼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 긴 제목의 그림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뻔했다.


삼킨 비소는 모두 토했고 자살은 미수에 그친다. 이 사건 이후 고갱은 성모 마리아를 타히티 여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기독교의 종교화를 여러 편 그리기도 했다.

화상 테오의 권유로 남프랑스 아를에서 고흐의 룸 메이트로 살다 견디지 못해 뛰쳐나오고 퐁다방에서 혼자만의 방식으로 그리다 제법 인정도 받았지만 인상파나 파리의 주류 회화 문법을 따르며 무리 지어 다니지는 않았다. 가족을 떠나 아예 문명과 담을 쌓고 살고자 머나먼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갔지만 가난과 고독, 향수병에 시달렸다. 근원적인 자아를 찾으려던 몸부림은 그가 죽은 후에야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원시 자연에 투영한 그의 시선은 세계 회화사에 별로 빛나고 있다. 고갱이 던진 물음은 영원히 유효한 인문학의 테마, 아니 인간의 테마가 아닐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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