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리켜 '비정상인', '정상인' 같은 용어를 무심코 사용해 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야만의 시대도 있었다.
도쿄 패럴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의 선전과 참가국 선수들의 인간승리의 소식은 올림픽처럼 큰 화제를 몰고 오지는 못하지만 잔잔을 감동을 준다. 신체의 핸디캡을 이기고 승부를 겨루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이들은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승자들이기에 서로의 경쟁은 또 다른 의미다.
예술계에도 장애를 딛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많은 이들이 있다. 운보 김기창 화백, 멕시코의 국민화가로 칭할만한 프라다 갈로처럼 자신의 장애를 예술로 승화한 경우는 무수히 많다.
몸의 불편함을 극복한 예술가들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은 전기기사로 일하던 29세 때 고압 전류에 감전돼 두 팔을 잃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수묵 크로키’라는 영역을 개척한 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음악에서도 청각장애의 어려움을 극복한 베토벤의 이야기는 장애를 이긴 예술의 위대한 메아리이자 장엄한 교향곡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장 뒤뷔페는 창창한 입지를 다져가던 중 23세에 그림 그리기를 돌연 중단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기교를 넘어선 순수성을 장애아들의 그림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추어 화가 나 어린아이의 그림, 정신병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작품의 매력에 빠져 이런 거칠지만 순수한 미술을 ‘아르 브뤼 ArtBrut'라고 칭하고, 가공되지 않은 원시적이고 본원적인 미술을 자신의 평생의 방향으로 설정했다. "날것 그대로의 예술"이라고 하기도 하고 번역은 제각각이지만 기교보다는 순수한 예술의 본질에 가까이 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신체장애를 가졌고 또 가난과 소외 속에서 학교 교육의 울타리에서의 배움이 짧았던 이철용 전 의원은 소설가로 정치가로 한 시대를 풍미하다 역술인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그가 자전적으로 경험한 <어둠의 자식들>이나 <꼬방동네 사람들>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처럼 성장통을 앓았던 한국사회의 뒷골목 퉁경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제법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의 소설에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쓰기 힘든 날 것 그대로의 현장감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이철용 문학에도 이런 아르 브뤼적인 요소가 언뜻 보인다.
최고 수준으로 단련되고 숙련된듯한 지성과 건강한 몸으로 느끼고 이룰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예술에서 일어난다. 그 울림은 AI가 대신할 수도 없고 어떤 기계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어럽다. 날것 그대로의 것들은 때로 세련미가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그 울림은 더 큰 경우가 많다.
진정한 예술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된다.우리가 추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만큼 아름다울 수도 있다.
- 장 뒤뷔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