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된 인생

위대한 실패

by 호림

인생을 도전이라고 한다면 탐험가의 인생이야말로 그 '클래식' 이 아닐까요.

여름이 갔습니다. 코로나에 또 더위를 이기는 긴 여정이었지만 에어컨 바람만큼이나 여름을 견디게 한 일등공신은 책상을 지킨 몇 권의 책과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책 한 권이 보입니다. 남극을 세 번이나 탐험한 어니스트 섀클턴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의 탐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덕분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 추운 남극의 부빙 위를 텀험대원들과 같이 걷는 느낌으로 방 안의 온도를 더 떨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남극탐험대의 선장 섀클턴의 일은 하루에 20Km 또는 30Km를 주파해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시간을 안배하고 선원들의 임무를 적절히 지시하는 일입니다.

선장과 지휘자의 일은 닮았습니다. 어떤 템포로 곡의 종착지에 도달할지 악기별로 어떤 셈 여림으로 음색을 낼지 모두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어떤 면에서 시간관리의 예술입니다. 클래식 음악도 시간을 어떤 식으로 안배할 것인지 '프레이즈'를 배치하는 작곡가의 능력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요인입니다.


우리는 신사처럼 죽을 것이며 불굴의 정신과 인내력이 남아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 짧은 글과 우리의 사진이 그 이야기를 대신해 줄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더 이상은 적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로버트 스콧

죽음을 앞둔 탐험가 로버트 스콧 대령의 마지막 일기입니다. 스콧은 정복이라는 기준으로는 남극대륙 탐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일기가 공개된 이후 위엄 있게 최후를 맞은 탐험가로 재조명되어 '대영제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후세에 탐험가의 정신을 보여준 위대함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성공보다 위대한 실패가 있다면 스콧의 남극 탐험 여정이 빠질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스콧의 마지막 일기가 리더의 위엄과 품격을 보여주었듯이 악성 베토벤도 초연에 싸늘한 반응이 따르는 음악에 대해 예상했다는 듯 "이건 후세를 위한 음악이라네" 하며 담담하게 반응한 적이 있습니다. 당대의 영광과 성취에 도취되지 않았기에 악성의 경지에 도달했겠지요.

섀클턴 또한 그의 위대한 실패가 있었기에 영국이 '경'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섀클턴은 한 번의 남극 탐험 성공 이후 두 번째는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27명의 대원 전원을 생환시켰지만 극지를 밟지 못해 어떤 면에서는 실패한 탐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탐험이 어떤 성공한 탐험보다 가치 있는 여정으로 탐험사에 남은 것은 불굴의 의지로 대원 전원을 생환시킨 섀클턴의 위대한 리더십이 높이 평가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섀클턴 경이 위대한 것은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도 다시 남극 도전에 나선 것입니다. 결국 세 번째 도전에서 섀클턴 경은 남극의 부빙 사이에서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은 경쟁 속에서 극지 탐험에 버금가는 일상을 보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일상의 매일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탐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클래식'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쉼표의 시간이 들어선다면 예술이나 인생을 클래식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VIP석에 들어가야겠지요.


우리는 우리 인생의 선장이자 지휘자입니다. 아침의 서늘한 바람은 이 가을을 어떤 행로로 항해할지 어떤 색의 음악으로 연주할지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