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거나 적응하거나

예술가의 자리와 밥벌이

by 호림

"저항하거나 적응하거나"


예술가도 시대의 풍랑을 때로 온몸으로 맞으며 파고를 헤쳐간다. 물론 항상 따뜻한 온기가 넘치는 삶에서

풍요 속에서 예술만을 생각하는 예술가도 적지는 않지만.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반하는 형식주의와 낭만에 경도된 작곡 태도를 반성합니다.

특히, 스탈린 동지의 따뜻한 지도편달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은 작곡가들이 있다. 한 때 러시아를 대표했던 클래식 작곡가들이 한 말이다. 험악한 세상에 저항하지 못해 적응하며 자신의 예술의 생명력을 이어온 삶을 쉬이 비난할 수만 있을까.


그의 아름다운 로망스를 즐겨 듣지만 쇼스타코비치가 그랬고 푸로코피에프는 정도가 더 심했다. 그렇지만 냉전체제 이래 소비에트도 서방세계도 이들의 음악에 귀를 막지는 않았다. 서방세계에서 쇼스타코비치는 본국보다 더 주목받았다. 문학과 예술의 찬란한 전통을 가진 러시아에서는 스탈린 시대에도 정상급의 작곡가들은 고급 자동차와 다차(러시아식 별장)에서 상류층의 생활을 누렸다.


한꺼번에 생활이 무너지고 어떤 형벌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부 당국의 검열 방침과 자아비판 요구에 이 예술가들은 타협했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회고록에서 이 당시의 상황을 의식했음인지 자신의 삶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헤매는 삶이었다는 비관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런 예술가의 고뇌가 녹아있었기 때문인지 왈츠 모음곡을 비롯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

극단의 탄압은 없어도 예술가들도 밥벌이를 외면하고 고고한 한 마리 학으로 살 수만은 없다. 떄로는 금기를 깨고 대중들과 가까이 가는 방법과 커다란 지갑을 채울 수 있는 길을 찾기도 한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가장 큰 함박웃음을 터트린 사람은 FIFA가 아니라 '쓰리 터네'와 그 매니저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야제에 축구장을 가득 채운 인파는 고작 2-3천 명 들어가는 대규모 극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친 상업적 행보에 클래식을 팔아먹는 장사꾼이라는 투의 비난이 일자 파바로티는 이런 투의 말로 비판에 일침을 가한다. "내가 왜 팝스타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파바로티는 '파바로티와 친구들' 프로젝트나 다양한 무대로 더 많은 부를 일궜다.


자본주의가 활짝 핀 미국의 대표적 현대 작가답게 앤디 워홀의 의식은 점잔 빼는 돈벌이 대신 대놓고 예술과 돈벌이를 동일시한다. 그는 조수를 고용해 작업실을 아예 팩토리(factory)라고 하고 대량 생산하는 공산품처럼 작품을 만들어 팔았다.


좋은 사업은 최고의 예술이다. Good business is the best art.

- 앤디 워홀


버나드 쇼만큼이나 천재성이 돋보이는 경구와 화려함 입담으로 시대를 풍자하고 때로는 조롱했던 천재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예술가의 고단한 삶을 엿보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도 밥벌이 앞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은행가들은 식사 중에 예술을 논하고 예술가들은 식사 중에 돈을 말한다.

When bankers dine together they discuss art,

when artists dine together they discuss money.

- 오스카 와일드

생사의 기로에 서거나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시대에 '저항이냐 적응이냐'의 문제는 아니더라도 시대와 상황은 다른 차원의 고민을 늘 예술가에게 안긴다. 그런 문제 자제도 예술에 녹아들어 우리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일이 예술가들의 몫이다.


AI시대의 현란한 기술발전과 첨단 미디어의 위세 속에서 화이트 큐브에 갇힌 예술, 아름다운 선율 하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답하는 것 또한 저항하거나 적응해야 할 예술가들의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