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예술로 만든 안경알 세공사

스피노자 읽는 새벽

by 호림

직업을 한 두 개 이상 가지고 자신의 일을 너끈히 잘 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저녁이 있는 삶이 되어가는 것도 이런 추세를 강화시킨다. '본캐'와 '부캐'라는 유행어가 나올만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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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서양철학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지만 직업은 안경알 세공사였다. 프랑스 황제 루이 14세가 스피노자의 다음 저서를 자신에게 헌정하면 거액의 연금을 주겠다고 꼬셔도 거절했다. 대학교수직도 자신의 자유분방한 연구에 방해된다고 사양했다.


자신이 너끈하게 생계를 유지할 안경알 세공 기술이 있는데 비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런 환경에서 폼나는 직업이 주는 위엄은 없었을지 몰라도 특정한 학파나 후원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연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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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으로 연구한 철학자이지만 당당히 그의 자유주의적인 사상은 서양사상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안경알 세공이 생계를 위한 '본캐' 일지는 몰라도 우리가 기억하는 스피노자는 철학자이다.


삶의 목적과 행로에 대해 깊이 고민한 안경알 세공사는 신앞에 경건함을 넘어서 무조건적으로 신을 상상하고 복종하는 삶을 거부했다. 또한 오로지 신의 대리자로서 통치하는 군주의 지배하에 있는 체제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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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네덜란드의 유대인 상인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유분방하고 당시로서는 신성모독에 가깝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사상으로 유대인 사회에서 파문당했다. 이후 고초를 겪다 44세에 삶을 마감한 스피노자에 대해 후대 학자들은 그의 자유주의적인 사상이 서양 근대 사상의 중요한 물줄기가 되었음을 인정한다.


그의 철학은 한편으로는 범신론이나 유물론적 관점의 사상으로 해석되기도 해서 유물론과 관념론 양쪽에서 그의 사상을 끌어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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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섬기는 문제는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일 수도 있기에 스피노자의 생각을 무조건 따르거나 맹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스피노자의 이런 독립 연구자로서 높은 사고력과 엄청난 탐구욕에는 존경을 표할만하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업종일수록 다빈치형 인간으로 'N 잡러'를 지향하기 쉽지 않은 시대다. '본캐'를 훌쩍 넘어선 17세기의 안경알 세공사에게서 삶을 예술로 만든 위대한 몰입의 힘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