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대학 친구 몇을 만났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
죽고 싶어도 떡볶이는 먹고 싶고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취향들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린 사소한 취향과 즐거움을 버릴 수 없다.
가끔 술을 즐기지만
주정뱅이가 되지 않으려면
무섭게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어르신의 가르침은 철저히 지켜서인지
술자리의 실수는 여태껏 없어서 다행이다.
후배들에게 자신이 마신 술병 숫자보다
더 많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과는
진정한 친구가 되거나
애써 사귀지 말라고 얘기한다.
술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마시고
아무에게나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되진 말라고도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혼술은 절대 하지 않는다.
술은 관계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생각에.
와인이건 커피건 족보를 따지느라
오랜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 편이다.
그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것을 즐기고
주문할 때는 맛의 대체적인 윤곽만 얘기할 뿐이다.
우리의 취향은 제각각이고 참으로 다양하다.
미술작품은 넘쳐나지만
화이트 큐브에 갇힌 상태로 보는 경우가 많다
공연장의 깜깜한 공간에 갇힌 화음도 즐긴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화음인지 몰라도
이 정제된 형식만 예술이 되는 걸까.
우리의 눈과 귀로 들어와
아름다움을 자극하는 것들은 많다.
그것에 "아 예술이네"라고
탄성을 지르는 순간
예술이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질식할 듯한 도심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
가을 단풍의 오묘한 자연미가 담긴 색,
자녀의 서툰 피아노 연주 소리......
이런 것들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열린 마음은
언제나 새로운 관점을 주기에.
마음을 열면 눈과 귀로는 새로운 예술이 들어온다.
가을엔 정말 많은 작품들이 눈으로 들이닥치고 있다.
가을이 되면 신문사 파리특파원을 지낸 후 이 노래를 이브 몽탕에 견줄 실력이라며 뽐내던 선배가 문득 생각난다. 노래에 심취해 듣는 이의 반응은 잘 생각하지 않았던 선배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무심하지만 귀엽기도 한 선배의 취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