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파격

삶의 론도를 꿈꾸며

by 호림

지구상에서 뚜렷한 사계의 축복을 누리는 나라도 많지 않다. 가을의 서정은 생명체의 기승전결을 생각하게 만든다. 기승전결, 사지선다 시험 같은 형식은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우리 일상처럼 클래식 음악에도 보편적으로 쓰이는 형식이 있다. 소나타 형식은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ABA)로 구성된 작곡 양식이지만, 여기에 약간의 파격을 더해 론도 형식(ABACA)이 만들어진다.


시대별로 통용되는 작곡 양식은 바로크 시대와 고전주의, 낭만주의를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재도 언젠가 클래식으로 남을 수 있는 곡들이 어느 작곡가의 악보에 그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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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귀에 들어오는 언어가 담기지 않은 클래식 음악에서 곡을 해석하는 이들은 작곡가의 의도보다 항상 풍부하게 주석을 달았다. 정작 작곡가는 특정한 의도나 선율이 지니는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고 대개는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베를리오즈가 그 유명한 <환상교향곡>을 작곡한 동기는 여배우에 대한 열렬한 구애였다. 또한 철저한 '표제' 즉, 주제의식을 담은 음악이다. 오늘날 <환상교향곡>은 표제음악의 대명사격으로 널리 연주되고 있지만, 절대 음악이나 표제음악의 논쟁은 어쩌면 조선시대 예송논쟁 같은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좀 좋게 봐도 관념론이나 유물론 같은 지리하고도 결론 없는 소모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음악의 선율이 아름다우면 그 동기가 어떻든 모든 건 용서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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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은 이 <환상교향곡>에 반해서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베를리오즈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의학공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해부학 실험실에서 문득 뛰쳐나와 음악가의 삶았던 헥토로 베를리오즈가 될 수는 없다. 또 연인을 위해 멋진 곡을 만들 수도 없다. 파격의 사나이 베를리오즈였기에 이런 과감한 발상의 음악으로 대중과 한 여인의 사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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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떤 면에서 기승전결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기승전 이후 결에 대한 판단은 아껴둘 필요가 있다. '개관사정'이라는 말처럼 타인에 대한 판단 또한 조금은 유보해보자. 부모님 속을 끓이며 책과는 담을 쌓고 오락에 빠져있는 사춘기 소년이 어떤 삶의 기승전결을 만들지도 아무도 모르기에 좀 더 지켜보자.


이 찬란한 가을 아침,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파격을 생각하는 건 겨울이 어디선가 곧 쳐들어올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막상 실천하기 어려운 건 내 삶의 소나타도 이젠 'B'구역 어딘가를 지나고 있기에 마냥 파격에 젖어 론도를 추구하기 두려운 마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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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가을이 가기 전 내 일상의 소나타에 조촐한 론도 형식 하나를 슬쩍 끼워 넣을까 한다.

(326)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2악장 무도회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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