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와 귀천

by 호림

남프랑스의 거대한 영지는 이 귀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사냥에 나설 말과 하인들도 성장함에 따라 준비될 터였다. 이 금수저를 물고 나온 프랑스인은 신체가 작고 기형이어서 말을 타고 사냥할 수 없었다. 귀족 부부의 실망은 말할 수 없이 컸고 그늘을 안고 있었던 아들은 따분한 영지에서의 귀족놀이 대신 파리로 떠난다.

상처를 안고 온 도련남을 품어 준 이는 사창가의 상처받은 여인들이었다. 화가가 된 귀족은 이들의 몸을 있는 그래로 그렸다. 결코 과장된 아름다움으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알몸의 인간은 빈부와 귀천의 차이도 보이지 않았기에 여인의 몸을 즐겨 그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천하게 여긴 여인들을 따뜻하게 대한 귀족은 화단에서 속되고 천하게 여긴 상업미술 포스터로 주목받았다. 우연히 그리게 된 믈랭루즈의 포스터는 툴루즈 로트렉을 세상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공증인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사생아로 신분사회인 당시로서는 천하게 여겨지는 신동이었다. 거기에 동성애자라는 혐의는 이 천재가 세상에 나오는 길을 막을 태세였다. 그림과 건축술은 물론 온갖 문야에 깊은 식견을 보였기에 르네상스적 교양과 지식을 가진 인물의 대명사다. 이 흙수저 신동은 세상을 홀린 신비의 미소, <모나리자>를 만든 다빈치가 되었다.


'야합소생'이라는 말은 사생아를 은유하는 말이었기에 문헌에 따르면 동양의 성현 공자도 천출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상층부나 조선의 사대부들도 이 비천한 출신의 공자의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으며 성경처럼 읽고 외웠다.

영어로 사생아는 'Natural child'라고 한다. 드넓은 자연의 품 안에서 하늘과 땅을 부모로 삼은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다빈치와 공자가 되어 좁은 시야를 가진 범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예술과 학문을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천함과 귀함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은 고귀한 정신을 추구하지 않는 순간 천함의 나락에 떨어질 수 있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경계선에 선 경우가 많다. 아마도 예술의 영원을 알아가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천함의 유혹을 쉬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갖춘 귀족의 우아하고 준비된 듯한 실크로드에서 디딘 걸음이 안전하고 길게 간다는 보장은 없다. 터덜거리는 길이지만 묵묵히 걸어간 길이 끝내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길지 아무도 모른다. 삶이라는 여정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를 때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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