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의 편지

by 호림

헤르만 헤세는 습작을 읽고 평해 달라는 작가 지망생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당신의 작가적 재능을 쉽게 결정해 장차 독일문학의 <파우스트>를 놓치는 건 아닐까 께름칙한 마음을 평생토록 끌고 나닐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왜 굳이 작가가 되려 하시는지요? 재능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작가를 꿈꾸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를 독창적이고 마음이 순수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섬세한 감각과 정제된 정서의 소유자라는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 명확히 알아가고 체험의 힘을 고양하고 양심의 날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한은, 문학 창작을 계속하십시오. 그러면 장차 작가가 되건 안 되건 상관없이 당신은 맑은 눈으로 깨어있는 유용한 정신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희망하듯 그것이 당신의 목적이라면 그리고 혹 시문학을 감상하거나 창작함에 있어서 일말의 장애라도 감지되거나 순수한 삶의 감정의 희석이라든지 허영심 같은 빗나간 샛길로 빠질 유혹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럴 때는 문학을 일체 집어치우십시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p.6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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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아가사 크리스티는 자신의 직업을 묻는 문서에는 늘 '가정주부'라고 적었다고 한다. 책을 쓰는 이유는 집을 넓히고 가꾸는데 도움을 얻거나 금전적으로 가정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고도 한다. 문학소녀의 열정이 나를 글로 이끌었다고 한다든지 좀 더 멋진 말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다. 그녀가 영국 왕의 작위를 받은 이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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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그저 진정성 있는 삶을 살다 넘치는 이야기들을 타인들과 공감하고 싶은 시람은 아닐까. 작가는 사람들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아닌 독자와 대화하는 사람일 때 더 많은 공감을 얻을지도 모른다. 굳이 대중의 갈채와 공감에 목을 매고 글쓰기에 밥벌이를 의존하는 작가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글 쓰는 것으로 자신과의 대화에 충실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대중의 갈채가 아무리 뜨거워도 그저 가정주부일 뿐이라는 아주 두꺼운 '겸손'이란 옷을 입었던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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