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때 소아바미를 않았고 열아홉 꽃다운 나이엔 교통사고로 육체가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통틀러 22번의 외과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21살 때는 42살의 유부남과 사랑에 빠집니다. 이쯤에 온갖 불행과 결혼한듯한 여인을 짐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 확실해집니다. 칸딘스키는 이 여인의 그림에 감동한 나머지 전시장에서 눈물을 흘렸고, 피카소는 파리에서 그녀의 전시를 보고 파리를 떠날 때까지 그녀와 그녀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독과 슬픔의 심연에 갇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이면 이 여인을 생각합니다.
고독을 처절하게 자신의 슬픔을 그리는 시간으로 삼는 것도, 정신이 단단한 열매를 맺는 시간으로 삼는 것도 자신의 선택입니다. 프리다 갈로는 이 두 가지를 훌륭하게 해낸 사람이었습니다. 몸통을 감싼 강철 지지대처럼 강한 정신이 그녀를 받쳐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세기 최고 여류화가를 꼽을 때,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화가를 꼽을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프리다는 47세까지 고독과 고통을 달고 살면서도 자신의 몸과 현실을 부단히 표현했습니다. 평생 끊임없이 외도를 일삼고 심지어 프리다 갈로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피워서 프리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이 화가 디에고 리베라였습니다.
디에고는 프리다에겐 평생의 사랑이었기에 그녀는 그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 그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끔찍한 산고 끝에 아이를 유산하고 대책 없이 피를 흘렸습니다. 절규하는 프리다를 보면서 리베라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2008년 노벨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르 클레지오는 <프리다 갈로 & 디에고 리베라>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구급차 안에서 디에고는 절망적으로 발작하는 프리다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튿날 그는 그녀에게 물감과 연필을 가져다주었다. 그녀가 그리는 그림들은 그녀로 하여금 비극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디에고는 이것만이 그녀가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라다 갈로가 가을의 고독을 느끼며 커피 한 잔을 찾는 내 사치스러운 새벽에 당신의 물감과 연필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