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은 로시니나 벨리니도 있지만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곡가의 양대산맥으로는 아무래도 베르디와 푸치니를 들 수 있을 듯하다. 두 거장의 삶 또한 극적이었다.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경우는 어쩌면 오페라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25세 청년은 2살 연하의 유부녀 엘비라와 사랑에 빠져 어디론가 도망쳐서 살림을 차렸다. 일찌기 <마농 레스코>, <토스카>, <라보엠>의 성공으로 부와 명예를 얻고 당시로는 흔치 않게 자가용 자동차를 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자동차가 화근이 되었다. 자동차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해 하인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나비부인> 때문이었다. 머릿속이 온통 <나비부인> 이야기와 작곡으로 차 있었을 때 서둘러 악상을 기록하기 위함인지 급히 집으로 가자고 운전사를 채근했고 차는 낭떠러지로 굴렀지만 다행히도 상반신은 다치지 않았다.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는 외모가 수수한 여성 도리아를 푸치니를 수발하는 하인으로 들였다. 여러 번 바람을 피우다 발각된 푸치니였기에 부인의 경계는 삼엄했고, 급기야 의심은 커졌다. 하녀를 해임하고 모욕을 주었다. 특별한 물증은 없었지만. 아무리 푸치니의 바람기가 심해도 44세의 남성과 16세 소녀의 사랑을 의심하기는 좀 무리가 있었다. 하인 도리아는 대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여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다 얼마 못 가 자살했다. 엘비라는 부검 결과 처녀막이 그대로 보존됐다는 물증을 제시하는 유족들과의 법정 공방에서 수세에 몰렸다.
난처한 쪽은 이쪽도 저쪽도 편을 들지 못했던 푸치니였다. 이 와중에 합의를 마치고 푸치니는 필생의 역작 <나비부인>을 완성했다. 극 중에 초초상은 미 해군이 남긴 자신의 혼외자를 키우다 자살한다. <미스 사이공>의 여주인공과 거의 유사한 운명이다. 이런 애처롭고 가련한 비련의 여인을 생각하며 푸치니가 만들어낸 선율이 지금도 전 세계 어디선가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다.
대가 푸치니를 모신다는 자부심이 가득했을지도 모를 순수한 소녀 도리아는 비록 하인이었지만 푸치니의 오페라 대본을 읽으며 곡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봤다고 한다. 아마도 푸치니는 자살한 가련한 소녀 도리아를 생각하며 나비부인을 작곡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