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춤주지 않았던 날은
잃어버린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하나의 큰 웃음도 불러오지 못하는 진리는
모두 가짜라고 불러도 좋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와 이사도라 덩컨을 연결 짓기는 쉽지 않지만 두 사람은 춤을 즐긴 것으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니체의 춤은 몸의 재발견이나 인생의 '자유' 같은 심오한 은유와 연결 지을 수도 있다.
몸치급인 나처럼 남들 앞에서 춤추는 일을 고통스럽게 여기는 이도 많겠지만 누구나 흥겨운 음악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경험은 있을 것이다.
"나는 니체에게 춤을 배웠다." 현대 무용의 어머니라는 이사도라 덩컨이 한 말이다. 언뜻 이해가 안 가지만 다음 말을 들으면 이해가 갈 것이다. "내 무용의 원천을 이루는 세 가지는 그리스 예술, 우아한 고전음악, 그리고 니체의 철학과 사상입니다."
철저히 고독하게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과거의 인습이나 맹목적인 질서를 의심하는 눈을 가진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덩컨은 고전 발레의 도식을 거부하고 의상에서 몸짓부터 스스로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때로는 맨발로 나체에 가까운 파격적인 의상으로 춤을 추어 우아하고 품위 있는 고전 발레에 먹칠을 한다는 욕을 듣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덩컨은 자신의 무용세계를 받아주지 않은 조국을 떠나 유럽 각지로 떠돌다 시피하며 자신을 춤을 추었다. 개인사업을 하든 조직에 소속되어 어떤 일을 하든 우린 얼마 간 그 업종의 룰을 지키되 자신의 방식으로 춤을 출 수 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스카프가 자동차 뒷바퀴에 말려들어가 질식사할 때까지 덩컨의 춤은 계속되었다.
우린 어쩌면 세상의 관행으로 정해 놓은 많은 권위와 질서에 무턱대고 복종하며 매일 질식하는 더 안타까운 삶을 살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제대로 된 자신의 춤을 한 번 춰보지도 못하면서.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하는 휴일은 정신에 휴식을 주면서 춤을 추기 좋은 날이다. 토슈즈를 벗어던진 덩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