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은 예술과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저출산문제나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고르기아스의 매듭을 끊을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찾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런던에서 특정지역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을 묻는 질문에 모두가 대중교통이나 절묘한 환승루트를 적어냈지만 어떤 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친구와 같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 답을 낸 이는 어린이였다. 이렇듯 동심은 때로 기상천외한 답을 줄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어린이 같은 그림을 그린 듯 하지만 피카소는 라파엘로의 작품 같은 고전미 넘치는 작품을 그릴 수 있는 정교한 데생 능력을 가졌었다. 그렇지만 과거의 문법을 거부한 피카소는 어린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사물을 보았기에 입체파를 태동시켰다. 후일 노장 피카소는 어린이가 되는데 평생이 걸렸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잭슨 플록은 그림은 반드시 붓으로 그려야 하는 게 아니라 유화 페인트를 통째로 캔버스에 들이부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기에 구겐하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 중에 들어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중 하나는 회화는 화가들의 정교한 붓질을 연상하게 하는 직업이라는 것일 수 있었다. 적어도 입체파, 추상표현주의의 파도가 맹렬하기 전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그건 헌법에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의 벽을 가지고 "그래야만 하겠지"하는 불문율을 무수히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은 우리의 난제는 문제를 일으킨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차원이 다른 해법을 위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기도 하다. 훌륭한 공직자는 예술가의 마음을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두뇌는 때로 빌릴 수 있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국면을 해결하는 두뇌는 결코 빌릴 수 없다. 그 빌릴 수 없는 일을 하는 게 창의성이 아닐까. 어떤 문제는 때로 초읽기에 몰렸을 때 극적인 해법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동심으로 돌아가보기도 하고 붓을 버리다 보면 뭔가 작품이 나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