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경쟁력, 그리고 예술

by 호림

1911년 7월 도난당하기 전에는 그저 "원 오브 뎀"이었는데 그 이후 급격히 가치가 상승했다. 우여곡절 끝에 1913년 루브르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가장 주목받는 여인이 되었다. 프랑스인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던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루브르의 상징과도 같아서 프랑스 정부에서 한 때 어느 부호가 8천억 불 이상을 준다는 제안도 거부했을 정도의 보배가 되었다. 이제 그 가치를 논하기 힘들 정도의 보배가 되었다. 고작 어느 귀족 부인의 자화상이 거장의 아우라와 스토리가 입혀지면서 대단한 문화자본이 된 것이다.


이탈리아인들 입장에서는 나폴레옹의 제국주의가 우리 선조의 귀한 유산을 앗아갔다고 한탄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나리자가 루브르에 벌어다 준 천문학적인 금액은 환산하기 힘들 정도다. 어쩌면 작품을 도난한 사람에게 루브르에서 훈장을 줘야 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처럼 우리는 많은 경우 브랜드와 이미지, 거기에 입혀진 스토리가 가져다준 가치를 소비한다. 고급 와인을 투박한 표주박이나 종이컵에 주는 경우와 크리스탈잔에 따라 줄 경우의 생각해 보면 어떤 경우가 제 맛이 날지 짐작할 수 있다. 가끔 막걸리를 와인 잔에 마신다.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에 못지않은 "고급 아이보리 와인"이라며 잔을 부딪히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도 있다. 같은 유화물감도 어떤 이의 손길로 캔버스에 구현되었는가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 작가와 작품의 배경 스토리가 가지는 힘, 작가의 경력이 천양지차의 가격을 형성하게 만든다.


최근 내한공연을 열었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지하철에서 거리의 악사처럼 연주할 때는 간혹 푼돈을 던져주는 이가 있었지만 그를 봇 알아보는 뉴욕 시민들은 냉랭한 반응이었다고 한다. 고급 와인과 값싼 와인도 가격을 미리 알려주고 시음하게 하면 고급 와인에 '역시'하면서 엄지를 들지만 블라인드로 테스트를 했더니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실험이 있다.


어떤 이들과 한참 대화를 하다 또 출신학교나 고향 등 다양한 브랜드를 들으면 은연중에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어르신 세대에는 용돈이 생기면 S대학생들은 책을 사보고 K대생들은 막걸리를 마시고 Y대생들은 구두를 산다고 하는 우스개가 있었다고 한다. 또 특정 지역과 관련해서 맛과 기질 등 다양한 브랜드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형성되기도 한다.


개인도 국가도 자신의 브랜드를 긍정적으로 특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상대방에게 좋은 신뢰자본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단박에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전통'을 만드는 힘은 부단한 혁신이나 긍정적인 정체성을 만들려는 오랜 정성과 노력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예술의 경우도 작가가 컴컴한 동굴에서 수련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을 자신만의 보물을 가다듬은 세월을 우린 종종 잊는다.

지름길만을 찾아 달리는 것은 잠깐 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긴 인생의 장정에서 때로는 독이 되는 경우도 있기에 우직하게 브랜드를 가다듬는 일은 소중하다. 개인도 조직도. 단순한 금전적 가치 이상의 무언가를 창출했을 때 그 신뢰자본과 브랜드는 쑥쑥 커갈 것이다.


준공 당시 구스타프 에펠이 설계한 철골 구조물은 많은 이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랬지만 이 흉물은 시간이 흘러 파리의 상징이 되었다. 문화 예술의 도시 파리의 심장과도 같은 에펠탑은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고 오래 보아야 아름다워지는 거대한 풀꽃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산에 오르며 파리의 에펠탑 루브르의 모나라지가 가진 상징성과 서울의 남산타워, 롯데타워를 대비하며 생각해 본다. 도시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는 상징물은 단박에 세계인의 가슴을 파고들기 힘들다. 18세기 이래 몽마르트르 언덕과 파리 뒷골목에는 청운의 꿈을 품고 달려온 가난한 청년들이 넘쳐났다. 그들의 눈빛만은 가난과 고독을 넘어 영원히 살아남을 예술을 꿈꾸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피카소가 그랬고 이탈리안 모딜리아니가 그랬다. 술값 대신 지불한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그의 사후에 술집 주인이 "아차 모딜리아니 그림을 창고에 처박아 두었지" 하고 찾았을 때 이미 쥐가 파먹어서 못쓰게 된 뒤였다. 수백만 불을 파먹은 얄미운 쥐를 한탄해도 소용없었다. 사르트르와 보브와르, 카뮈도 어느 카페에서 침 튀기는 토론 배틀을 벌여 실존의 문제를 앓았을 것이다.


"서울 마이 소울"이라는 슬로건처럼 정말 세계인의 심장과 영혼을 사로잡을 도시가 되는 여정은 생각보다 길고 험난할 수 있다. 어쩌면 대학로 한 귀퉁이, 신촌과 이태원...... 곳곳에서 서울의 혼을 느끼는 이방인과 시민들이 그 깊은 문화의 이력을 써 내려갈 때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류에 으쓱하고 거리 곳곳에 보이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안주할 때 누군가는 깊고 넓은 통찰로 오래가는 도시와 그 문화의 경쟁력을 생각할 때 세도시의 브랜드는 세계인들의 '소울'을 훔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 파리는 철골 구조물이 만들었다기보다 간혹 술값 외상을 걱정하는 예술가와 작가들의 붓과 펜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245) The Music of John Barry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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