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술은 어느새 손재주나 그림 솜씨를 겨루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 생각의 힘을 겨루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회화에는 다양한 기법과 진화와 혁신의 역사가 숨어있다. 모네의 그 유명한 <해돋이>처럼 인상파의 흐릿한 그림은 그리다 만 그림처럼 보여 인상파 태동 초기에는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현실의 선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명암의 대비로 극적 효과를 낸 렘브란트의 <야경> 은 회화사의 뜻깊은 성취로 평가된다.
어떻게 평면에서 회화의 새로운 길을 찾을까?
아트 페어에서 보면 그 수많은 그림들이 어떤 개성을 뽐내는지 집중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많은 그림들이 있는데 어떤 그림을 택해서 자세히 볼까. 빠듯한 살림에서 한 점을 덥석 살 수는 없을까 선택을 둘러싼 고민들은 늘어선 인파의 행렬만큼이나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19세기 프랑스에서 당대 최고의 평론가로 평가받기도 했던 샤를 블랑의 회화에 대한 17가지 감상의 포인트가 될 방법론을 인용해 본다. 예술가 또한 참신한 자신만의 작업 방법을 찾는 일은 어렵고 고달픈 일이기에 이는 곧 작품 작업의 방법론과도 통한다.
1. 회화는 독립이다. 회화는 자연의 모든 실재를 수단으로 영혼의 모든 개념을 하나의 통일된 표면 위에서 형태와 색상으로 표현하는 독립된 예술이다.
2. 회화는 설득이다. 회화는 어떤 유용성이나 도덕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서도 그 장면의 위엄성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고양시킬 수 있고, 가시적인 교훈을 통해 인간을 교화시킬 수 있다.
3. 회화는 한계에 도전한다. 회화는 물질적인 모방이 제약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허구는 뒤로 물러나고 정신만은 더 커질 수 있다.
4. 회화는 표현이다. 당연하게도 회화는 표현의 예술이지만 표현 예술로만 국한시킬 수 없다. 회화는 스타일로 인물을 이상화시키면서, 다시 말해 생생한 개성 속에서 전형적인 참모습을 되찾음으로써 아름다움으로 표현을 가다듬을 수 있다.
5. 회화는 숭고함이다. 회화는 숭고하게 고양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회화 그 자체의 고유한 수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화가의 창의력에 따른 것이다.
6. 회화는 구상이다. 작가는 주제를 생각해 내거나 첫 이미지를 고안할 때부터 회화 고유의 특별한 표현 수단을 감안해야 한다.
7. 회화는 통일성을 기하는 작업이다.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첫 번째 방법은 이미지의 배치다.
8. 회화는 원근법을 담는다. 화가가 그림을 구성할 때 원근법을 알고 있고 그것을 지킨다 할지라도 이런 법칙은 일부 감각에 호소할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9. 회화는 제스처를 담는다. 작가가 단지 데생으로 국한시켜 그림의 구성을 잡으려는 것이든, 스케치를 채색하는 것이든 간에 작가는 데생을 통해서 작 인물들의 자세, 몸짓, 동작을 명확히 함으로써만 표현에 들어간다.
10. 회화의 주요 대상은 자연과 인물이다. 인물화의 경우 구성이 결정되고 제스처와 동작의 모습을 잡았다면, 화가는 그가 표현해야 하는 형태에 그의 이상에 맞는 그럴듯함과 자연스러움을 위해 모델과 협의하기도 한다.
11. 회화는 빛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화가는 그가 택한 형태를 확인한 뒤에 빛과 색상으로써 그가 생각한 바를 도덕적으로 표현하고,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함으로써 작품을 마무리한다.
12. 회화는 명암을 조화시킨다. 명암은 어떤 형태를 도드라지게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전달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덕적 아름다움의 법칙과 자연 진리를 법규를 따르고 있다.
13. 회화는 색상 구사의 기술이기도 하다. 색상은 다른 예술 중에서도 특히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화가는 반드시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색상의 법칙을 알아야만 한다.
14. 회화는 터치의 예술이다. 봇 터치의 특징, 즉 물질적 실행의 질은 화가의 최후의 표현수단이다.
15. 회화는 다양성이 주요한 특징이다. 회화의 관습은 실로 다양하며 그 내적인 특성이든 장식적인 것이든 작품에 따라 화가가 채워야 하는 표면의 성격에 따라 다양해야 한다.
16. 회화는 생명력에 따라 그 서열이 갈린다. 회화 예술에는 상대적이든 또는 절대적이든, 지역적이거나 범세계적인 차원에 따라 그 서열이 어느 정도는 있다.
17. 회화는 스타일의 예술이다. 회화의 다양한 장르가 어디에 속하는지 여부를 떠나 열등하거나 우월한 것은 그 스타일의 문제다.
여기 한 프랑스 평론가의 견해를 전적으로 존중하라고 제법 긴 회화의 특성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일부는 공감하고 일부는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은 우리가 은연중에 회화 예술을 대하는 작가나 감상자의 시각을 포괄하는 견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런 요소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작업하거나 감상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성보다 감성, 직관은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이 예술 분야이기에.
2023 프리즈 아트 페어와 함께 시내 일원에서는 '영 리치'들이 수천만 원짜리 작품을 사들이고 있었다. 파티처럼 교류하며 곧 자동차나 유흥비로 탕진할 돈을 의미 있게 투자한다는 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회화예술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내 짧은 지식에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권하는 것 또한 예술 향유의 한 형태임은 분명하다.
블랑의 가지런하고 착실한 예술론의 저편에 번쩍이는 창의성의 본질은 숨어있을지 모른다. 초연 당시에 관객들의 소란스러운 항의에 시달린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또한 음악사의 문제작이자 주요작으로 이름을 올렸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