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은 괴짜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순응과 관습의 횡포를 타파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라고 한 바 있다. 이런 방면에서는 니체가 챔피언이었으리라.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다. 관성에 따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범인들의 일상이기에.
클래식에는 커다란 신화가 있다. 바흐나 베토벤, 모차르트의 음악은 결코 비판이 아닌 숭배의 대상이라는. 거장은 이미 종교처럼 숭배하는 경지에 이르렀고 새로운 사실을 통해 재조명하기보다 그 신화를 더하는 무수한 기념 연주와 찬송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음악의 아버지"라는 간단치 않은 수식어가 의례히 따라붙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또한 이미 건드릴 수 없는 영역에 이르렀다. 그런 면에서 호주의 음악학자 마틴 자비스 교수의 도전은 당돌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다.
그는 바흐의 그 유명한 무반주 첼로모음곡이 바흐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안나 막달레나의 작품으로 확신한다. 거기에 동조하는 여성 연주자들도 있다. 자비스 교수의 추적은 다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바흐의 신화와 클래식의 성은 견고하기만 해서 이런 소수설에 의미를 잘 부여하지도 않고 애써 증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비스 교수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에서 잠자는 바흐 악보 원본의 필적을 전문가 감정을 거쳐 철저히 고증해 바흐의 필적이 아니며 아내 막달레나의 필적이라는 것도 근거로 들고 있다.
예술작품을 듣거나 볼 때 우리가 덜 유명한 이의 작품이라고 해서 덜 사랑하게 될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의 선입견이나 인식구조는 거장의 아우라에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렇지만 그 선율의 작곡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무명 씨의 작품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있다.
선입견을 내려놓은 보통의 귀는 평등하다. 겸손한 귀로 들으면 들린다.
과거의 대가들에게는 카피스트가 대가의 악보를 대신에서 정확히 적기도 했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도 이런 부분이 묘사되고 있다. 바흐 역시 작곡에 대한 식견이 부족했을 아내에게 이런 필사를 담당케 했을 개연성도 있다.
한편으로 안나 막달레나의 작품일 수도 있는 것이 가수로서 악보를 볼 줄 알았고, 상당한 식견이 있었다는 것, 후대 여성 음악인들이 주장하듯 이 연주가 바흐의 여타 작품의 선율과는 판이한 부분이 있다는 것 또한 원작자를 의심하게 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
바흐의 아들의 구술에 의존한 바흐의 전기는 의붓어머니보다는 아버지 바흐의 위대성을 중심으로 전개됐을 것이라는 짐작도 충분히 가능하다.
펠릭스 멘델스존 또한 자신의 누이인 화니 멘델스존의 작품이 더 좋게 평가받는 것을 언짢아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부유한 금융인인 부친이 딸보다는 아들이 음악가로 평가받기를 원해 딸의 음악활동을 제한하기도 했다.
작곡가로 명망을 얻은 바흐는 궁정악장이나 칸토르의 지위로 살았다. 음악감독이나 음악교습가의 위치는
귀족에 의해 해임될 수 있는 안정된 신분이 아니었기에 일감을 찾아야 하는 처지였다. 더구나 10명의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바흐의 어깨는 무거웠을 것이다. 20살 차이가 나는 막달레나와 재혼할 때 바흐는 전처와 사별한 상태로 이미 자녀가 4명이나 있었다. 막달레나와는 13명의 자녀를 낳았고 살아남은 6명의 자녀를 키웠다.
이렇게 커진 바흐 가문 음악공동체의 일원이었던 안나 막달레나는 자신의 브랜드로 뭔가를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불리한 사회적 여건을 인식했기에 굳이 자신의 실명을 밝히는 것에 의의를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 이상의 세세한 고증은 음악학자들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지류의 작은 목소리 또한 거장의 아우라에 생채기를 내려는 '고약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인식의 관성을 돌아보려는 움직임으로 존중받을 일이다. 거장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일처럼.
분명한 것은 바흐의 음악은 여전히 휴일을 어루만지는 친구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안나 막달레나가 작곡한 것이거나 조력을 받는 것이라고 해도.
(45) [정경화 KyungWha Chung] 바흐: 샤콘느 Bach: Chaconne from Partita No 2 in d minor, BWV1004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