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8년 10월 소더비 경매에 나온 한 거리예술가 출신 작가의 <소녀와 풍선>은 100만 불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었다. 여기까지는 납득할만한 경매의 법칙을 따랐다.
뉴욕에서 출발한 거리예술 그라피티가 영국의 브리스톨 지역으로 옮겨갔다. 이 지역을 그라피티의 성지로 바꾼 이들은 스프레이를 들고 경찰의 눈을 피해 온 도시를 밤새 쏘다니는 청소년들이었다.
'뱅크시'라는 존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등장하기 전에도 영국에서는 다빈치에 버금가는 이름이었고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뱅크시는 그라피티와 스텐실 아트를 응용했고, 결정적으로 사회와 인류의 문제에 곰감하는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장벽에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서진 벽에도 그렸다.
미술관 전시 따위는 설사 돈다발을 들고 와도 하지 않겠다. 그림이 걸린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여자를 만나보는 것이면 족하다. 하위문화, 반문화 기질로 넘치는 청년의 아이콘은 돈과 명성이 아니라 내면에 춤추고 있는 "Say somethg"이 있었다. 주류라는 곳의 돈 냄새나는 러브 콜도 관심 밖이었다. 예술계라고 하는 것에 넥타이를 매고 소속되는 건 질색이었다.
기행에 가까울 정도로 기성 예술계에 대한 조롱이 섞인 전시들은 연일 세상의 주목을 벋았다. 허름한 창고를 빌려 아무리 대단한 컬렉터라도 줄을 서서 관람을 기다리게 했다. 조용한 화이트 큐브에서 젠틀한 복장으로 점잖은 대화를 나누는 갤러리가 아니었다. 브란젤리나 같은 할리우드 명사들이 그림을 사고 주 드로가 누추한 전시장에 찾아와서 그림을 고가에 사갔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전시회는 대박이었지만 돈과 명성이라는 달갑지 않은 훈장이 뱅크시를 흑두건으로 더욱 숨어들게 만들었다.
뉴욕의 노점상에서 10만 원도 안 되는 저가에 그림을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다. 오히려 팔리지 않아서 화제가 된 뱅크시의 작품을 덥석 사간 컬렉터, 아니 익명의 시민은 몇 배인지 모를 가격으로 보상받았다. 가난한 그라피티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를 이렇게 달랜 것이 뱅크시가 아닐까.
누구든 나이가 들어도 내면에 얼마간은 소년 소녀의 반항기와 주류 기성세대의 안정감이 혼재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조화겠지만. 뱅크시는 어쩌면 영원히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작품만으로 당신 안의 뱅크시를 찾아보라고 할 것이다. 자본주의 이면의 위선과 약삭빠름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약자에 대한 동정, 무엇이 옮은 지에 대한 내면의 질문...... 이런 것들을 잊고 살거나 애써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아마도 귀를 기울이면 뱅크시의 목소리가 어느 벽면에서 들릴지도 모른다.
경매에 나온 <소녀와 풍선>은 낙찰 즉시 파쇄되었다. 100만 불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일까? 그림 가격은 파쇄된 후 더 뛰었다. 가난과 익명을 사랑한 듯한 거리의 예술가는 어느새 돈과 명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