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속에 싹 틔운 예술

by 호림

타고난 총명함에 더해 명문가 출신으로 청나라로 가는 사절단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관직 생활의 꽃을 피우려던 순간 당쟁의 여파가 그에 이르러 제주도 유배라는 폭풍이 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외국으로 가는 특임대사 격에 임명돼 국가 중대사를 맡은 55세의 관리는 꿈에 부풀었으나 발령은 최소 되고 수감된 격이었다.


김정희의 개인사의 굴곡은 아팠겠지만 우린 하마터면 추사체나 세한도를 우리 문화재의 귀한 목록에서 잃을 뻔했다. 추사의 8년간의 제주도 유배는 문화재를 낳았다. 추사가 소년 출세의 성공가도에서 말년에 삐끗했을 때 제주도 유배는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제주도는 지금으로 치면 남극이나 북극보다도 아득한 고립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완성한 시기는 오랜 수감생활에서 출소한 57세였다. 비극의 개인사가 희극을 잉태한 것이다. 어떤 이는 분노로 이를 갈 때 어떤 이는 분노보다 오래 살아남을 찬란한 보석을 다듬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소설을 위해 책상머리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지만은 않았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부상도 당하며 삶의 진정성을 찾아 불면의 나날을 보냈다. 애주가였지만 술과 고독 속에서 빠져있지만도 않았다. 바다를 응시하는 노인처럼 자신을 부서뜨릴 수는 있어도 결코 좌절시킬 수 없는 환경에 강한 의지로 맞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완성했다. 프랑스의 어느 전도유명한 법률가 청년은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고향의 병실에서 붓을 잡았고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가 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한때 세간의 악평에 더해 절망의 골짜기에서 오선지에 한 줄도 쓸 수 없을 정도의 슬럼프에서 허우적거렸다. 우울증 비슷한 정신적 공황에 시달렸다. 귀족 신분으로 승승장구하다 피아니스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작곡가로도 거침없이 내달렸다. 차이코프스키를 넘어설 기세였기에 좌절은 더 깊고 컸다.


이런 정신의 병은 그의 발목을 잡았고 주술사의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당신의 다음 작품은 세계인이 사랑하는 곡이 될 것이요." 어느 점성가의 말이 한줄기 빛이 되었는지 불세출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회자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이 탄생했다.

어쩌면 세한의 찬 바람을 견딘 이들의 절실함이 살찐 소파 위에서 보다 더 찬란한 예술을 잉태하는지도 모른다.


힘든 시간은 오래가지 않아

그러나 강한 사람은 오래 남는 법이지.

- <앵무새 죽이기> 중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다단조 작품번호 18(카라얀 & 바이센베르크)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