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처럼

by 호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으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화가 폴 호건


뽕잎을 쉼 없이 갉아먹는다. 소리도 나지 않지만 뽕잎은 어느새 없어진다. 어느새 몸집이 자라 스스로 집을 짓는다. 그 집에서 실을 뽑아낼 정도가 되면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된다. 과거에는 농가의 소득원이었다. 화학섬유 산업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자연이 준 옷을 선물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인간도 이런 누에를 닮은 삶이라면 대단히 잘 산 삶이 아닐까. 쉼 없이 뽕잎을 먹듯 책을 벗하며 공부하고 결국에는 고치에서 실을 길어내듯 그 지식과 노동으로 사회에 유익하게 기여하는 삶이니까.


현대에 다빈치형 인간으로 추앙받는 이탈리아인은 움베르토 에코였다. 그는 읽기가 곧 생활이었을 정도로 독서광이자 몇 개 국어에 능통한 저술가였다. 한국에도 <장미의 이름> <다빈치 코드>가 책이나 영화로 소개되어 익숙한 이름이다.


책더미 속에서 쉼 없이 뽕잎을 갉아먹듯 탐독하고 나중에는 놀라울 정도의 방대한 지식을 세상에 쏟아낸 경이로운 작품을 남긴 작가는 종이책의 종말에 대해서도 흥미 있는 실험을 했다.


높은 건물에서 책과 디지털 리더기인 킨들을 동시에 떨어뜨려 그 상태를 비교했는데 책은 거의 손상이 없었지만 킨들은 망가졌다. 물론 패러디적인 요소가 있는 실험이지만 시사점을 얻을 수는 있다. 아날로그식으로 누에가 뽕잎을 먹듯 책장을 넘긴 지식은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어떤 노지식인이 쉰 살이 넘은 박사 출신 선배가 추천 도서를 요구하자 "언제까지 남의 지식만 집어넣을 건가 이제 그만 당신의 주장도 펼치는 책도 쓰고 하게나" 했던 말이 기억난다. 뽕잎 그만 먹어도 될 고치가 안되었기에 계속 먹어야 할 누에라면 그 시기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는 독서와 공부, 경험으로 쌓은 지식을 동시대와 후세대인들을 위해 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치에서 실을 길어내는 일이 결코 만만치는 않아도.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은 화려한 실크로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감싸기도 하고 무궁무진한 나비효과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어린누에처럼 뽕잎만 갉아먹고 살 수는 없다. 인풋 된 지식의 절대량이 없으면 고치도 없고 실을 뽑을 수도 없겠지만.


글을 쓰고 예술작품을 만드는 일에는 상상력이라는 재료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누에고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앵무새가 되거나 표절 혐의자는 될지 몰라도.


상상력이 부족한 게으른 누에가 고치가 되어 실을 뽑으려니 힘들기만 하다.


창조적인 일에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아인슈타인


(32) [ 2h Repeat ] 쇼팽(Chopin) _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Op. 11 - 2. Romance )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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