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언어는 드넓다.
한국어와 영어처럼 특정한 언어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그저 막막할 뿐이다. 물론 표정이나 몸짓으로 약간의 뉘앙스를 알 수는 있을지 몰라도.
클래식 음악의 리듬과 선율은 만국의 공통어가 될 수 있다. 설사 명확한 의미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작곡가의 의도라는 것도 사실 한 가지에 국한시키기가 애매하거나 후대의 해석이 붙어서 풍부해진 면도 발견된다.
미술의 세계 또한 그 표현법의 다양성만큼이나 작가의 의도에 대한 해석의 지평은 다채롭게 열려있다. 미적 가치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예술은 풍부한 표현의 신호다. 이 표현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건 즐거움을 준다. 정답이 여러 개 있을 수 있기에
예술에서도 미술이나 조각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형상을 만들어내기에 아폴론적인 요소가 강하다. 음악은 보이지 않지만 귀를 통해 감동을 주기에 디오니소스적인 면이 크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진리를 찾는데 학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예술, 특히 음악을 통해 세상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체는 종종 피아노를 치며 사색에 잠기곤 했다. 플루트를 연주하며 머리를 식힌 쇼펜하우어 또한 음악을 예술의 가장 높은 경지로 평가했다. 두 사람은 헤겔이나 칸트와 대비해 논리가 강한 이성적인 질서보다는 감성적인 면이 강해 디오니소스적인 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단선적으로 예술의 경계를 나누고 아폴론적인 것,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양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일상언어가 함축한 의미의 제한점을 알고 부단히 넓은 지평의 언어를 탐색하고 생각의 편향됨을 지양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품격을 높여줄 것이다.
비즈니스와 정치의 언어도 각박한 이성의 지배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건조한 사무실이나 일터에서 논리 싸움만 하지 않고 술 한 잔을 권하며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로 상대방을 초대하는지도 모른다.
가끔 독서량이나 지성의 깊이가 모자람을 느끼고 언어의 지평을 넓히는 방편으로 아폴론적인 것을 탐색하고 디오니소스 제전에 참여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간혹 디오니소스 축제에만 탐닉해 바쿠스신의 마수에서 해어 나오지 못하는 것 또한 경계할 일이겠지만.
Gustav Holst: "Jupiter" aus "Die Planeten" op. 32 mit Andrew Manze | NDR Radiophilharmoni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