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읽으며 모차르트를 듣다

by 호림

스무 살의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9번 2악장 안단티노의 선율을 들어보면 처연한 슬픔이 느껴진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난 청춘이 인생사의 깊은 슬픔을 알기나 할까. 의문이 들지만 그래서 천재인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비극에 입혀진 피아노 협주곡 21번 또한 애절한 슬픔이 배어있다.


우리 삶이 절망에 빠지고 비극적이라고 생각할 때도 예술은 그 삶조차 극복하는 가운데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니체는 절망의 골짜기에서 초인을 찾는 마음으로 짜라투스트라의 말을 전했는데 그것은 결국 인간이 아폴론적인 질서에서 이탈해도 디오니소스적인 축제를 즐기며 예술을 통해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로 읽힌다.


절망과 슬픔의 조건에서 일어선 사람들은 비극 또한 삶의 일부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삶의 가치는 윤택함 속에서 누리는 것보다 더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수많은 귀족과 양반들 대신 베토벤과 반 고흐가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을 사는 그들의 작품으로 기억한다.


풍요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충만한 행복은 들어설 자리가 비좁아 보인다. 넘쳐나는 정보는 만족대신 비교를 부른다. 비극의 수준에도 근접하지 못할 약간의 고난에도 우리의 삶은 흔들린다. 니체는 세계 내의 그 모든 고통과 고난에도 생을 즐기듯이 살라고 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세상을 춤추듯 살아간다고도 했다. 춤추는 신 디오니소스처럼 세상을 긍정하면서. 이때 예술이야말로 우리 삶에 충만한 생명력을 일깨우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다.


[일간클래식]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엘비라 마디간)' (1시간반복) ♬ Mozart 'Piano Concerto No. 21(Elvira Madigan)' (1Hour)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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