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처참한 몰골은 간밤의 가정폭력을 고발하는 사진이 아니다. 골딘이라는 여성 작가가 작품으로 버젓이 자신의 사진을 찍어 전시한 것이다. 멍든 자기 사진을 거침없이 노출한 여인은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이겨낸 자신의 전시 의도를 당당히 표현한다. "나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모든 남자와 모든 관계에 대해, 세상 모든 관계에 내재된 폭력의 위험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
여기 또 하나의 대담한 작품이 있다.
바나나의 화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교황이 운석에 맞아 쓰러진 듯한 조각상이다. 신성모독인지 아니면 의연히 혼란한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키는 성직자의 모습인지 정작 화가는 답이 없다.
이들의 표현의 경계를 잊어버렸거나 부끄러움이나 비난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한 과감한 표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린 언젠가 혼자만이 있던 컴컴한 방 안에서 벽장 안에 괴물이 있거나 문 밖에 호랑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울음을 그치지 않았던 아기였다. 너무나 거대한 두려움이 아이를 지배했기에 울었겠지만 엄마가 안아주면 금세 울음을 그쳤을 것이다. 안아줄 엄마는 이제 없거나 늙었지만 잠재의식 속의 두려움은 있다.
박세리 선수의 성공담 뒤에는 어릴 적 부친 박준철 씨의 혹독한 훈련이 회자되기도 했다. 밤중에 공동묘지를 다녀오게 한 아버지를 야속하게 생각하며 어린 소녀은 울지 않았고 깜깜한 밤의 정적을 가르는 스윙으로 두려움을 떨쳤다. LPGA 25승과 명예의 전당 입회와 세리 키즈의 영웅이 된 대선수는 그저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는 귀와 귀 사이의 15cm라는 말이 실감 난다. 두려움을 모르는 강력한 멘털이 있었기에 쓸 수 있었던 대선수의 기록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켐벨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웅의 여정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숲에 들어서면 길부터 찾는다. 그러나 영웅은 숲에 들어서면 가장 깊고 어두운 곳으로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향해 간다. 그는 숲에서 악령과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두려움은 인생의 가장 큰 적이다.
인생에도 태풍은 언젠가 몰려오지만 두려움 없이 덤비는 사람은 극복한다. 조지프 켐벨의 영웅이 길을 찾지 않고 가장 캄캄한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듯이.
여기 두려움 없이 청춘을 보내며 뉴욕 뒷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벽에 그라피티라는 이름의 낙서를 일삼던 소년이 있었다. 앤디 워홀을 만나 거사를 도모하려다 실패하고 대신 꿩대신 닭으로 만났던 또래의 검은 청년과 어느 유럽의 무명 갤러리스트의 의기투합은 출발 당시는 큰 재미를 못 봤다. 갤러리스트는 의욕적인 전시에서 그림이 안 팔리자 작가에게 전부 우송하느니 자신이 다 떠 안기로 결정한다. 당시에는 일정한 가격을 쳐주었으니 이 히피 화가는 고마워했다.
서른이 채 되기 전에 두려움을 이겨낸 소년은 검은 피카소 장 미셀 바스키야가 되었지만 약물과 무절제한 생활이라는 악령을 이기지는 못해 단명했다. 반면 유럽의 화상은 세계적인 갤러리스트로 자신의 화랑을 서울 한남동에도 가지고 있는 타데우스 로팍으로 아직 건재하다. 로팍이 다수 보유하고 있는 바스키야의 작품 값은 이제 위홀과 비교해도 꿩과 닭이 바뀐 상태가 되었다.
두려움을 이긴 커다란 한 번의 용기가 없었다면 바스키야의 보물들은 로팍의 손에 없었을 것이고 그저 그런 갤러리스트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대작의 감정에 나선다는 어느 갤러리스트의 기대에 찬 눈빛이 기억난다. 두려움을 이겨낸 진품을 만나길 기대한다. 두려움을 숙명이라고 부르며 정해진 길을 가거나 다른 사람을 모방하기 급급한 쉽고 익숙한 위작의 유혹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이 예술이든 인생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