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큐브엔 아무것도 없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변하고 있다. 작가는 그 자체도 하나의 예술 현상이라고 작품으로 내놓는다.
존 게이지의 <4분 33초>라는 연주는 아무도 없는 무대에 침묵만이 흐른다. 실은 완벽한 침묵은 없었고 관객의 기침 소리, 늦게 들어오며 문을 여는 소리, 그리고 미세한 소음을 작가는 예술로 정의했다.
뒤샹의 소변기, 카텔란의 바나나, 만초니의 똥...... 현대미술이 영토는 끝간 데 없이 넓어지고 현란한 아이디어들은 때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우린 불완전한 시각과 청각에 의존해 감상하고 거의 관습적으로 또는 유명하고 좋다기에 덩달아서 줄을 서서 갤러리에 가거나 공연장을 찾기도 한다. 평론가의 몇 줄 평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교양인의 미덕인양 칭찬의 대열에 줄을 서며 추상적인 말들을 늘어놓으며 감상 뒷얘기를 하기도 한다.
예술작품보다 더 난해한 것이 인간이다. 그렇지만 타인들을 쉽게 재단하기도 하고 자신을 안다고 하지만 실은 잘 모른다.
인정받지 못했던 화가지망생, 갤러리스트, 가난한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지친 전도사의 퀭한 얼굴......
뭐 하나 제대로 해내 적이 없었던 젊은이에겐 좌절과 실의에 빠진 나날들이 평범한 날보다 더 익숙했다.
그렇지만 그림이 자신의 종교가 된 이후 그의 내면은 그림으로 세상을 대면하는 일의 신성함이 차지했을 것이다.
반 고흐가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가족과 만났다. 한동안 그림을 안 그리고 책만 읽을 때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도대체 뭘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붓을 들고 그리지는 않고 고전과 소설을 읽은 모습에 답답해했지만 반 고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후세대에 위대함으로 남을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엔지니어가 아니었다. 인문학도에서 괴짜경영자로 자신의 진가를 몰라주는 세상과 투쟁하듯 살았다. 명예와 부를 거머쥔 뒤에도 계속 배가 고팠다. 그러기에 "나는 소트라테스와 점심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면 내 애플 주식 전부를 줄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인간을 끝내 몰랐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을 알라고 한 스승을 갈구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아닐까. 붓질의 테크닉은 차후의 문제일 수 있다. 특히나 그가 만약 위대한 예술가 계보에 오를 사람이라면. 범위를 넓히면 어떤 직업이라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테크닉의 기본을 충분히 갖춘 채 적어도 인생의 의미를 한 조각이라도 찾고자 하는 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