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석함의 한계

by 호림

많은 분야에 성취도가 남달라 신동이나 천재로 떠받드는 존재가 있다. 그렇지만 전 생애주기를 걸쳐 위대한 성취를 이룬 경우는 지능이나 천재성이 빛난 경우보다 꾸준함으로 승부를 낸 경우가 많다.


에디슨은 말년까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발명의 영토를 넓혔고 윈스턴 처칠 또한 노정치인으로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이들의 지능지수나 학업성취도는 보통에도 못 미쳤던 것으로 알려진다. 인류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은 상당 수가 명석함보다 우직함 쪽에 가까웠다.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칠순을 넘기고도 꾸준히 필력을 과시하는 노력형이 아닌가 한다. 그는 에세이에서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두뇌의 명석함만으로 일할 수 있는 햇수는 기껏해야 십 년 정도다. 그 시기를 넘어서면 두뇌의 명석함을 대신할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암기력과 총명함은 끝 간 데 모르고 용량을 넓히는 슈퍼 컴퓨터가 된 인공지능이 상당 부분 대처할 것이고 인간의 일은 통찰력을 발휘해 그 방향성을 제어하는 일이 될 것으로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측한다. 컴튜터와 인간의 일자리 경쟁은 이미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로 인간의 사고력은 그 영토를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아마도 인간 최후의 보루는 인문학적 통찰이나 예술적 감수성이 아닐까. 인공지능은 아무래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응용할 수는 있어도 궁극의 창의력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설사 흉내를 내더라도 체온이 담긴 성찰은 온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여기저기 챗 챗 하는 소리가 들린다. 물음표만 제시하면 자판기처럼 답을 내는 인스턴트 지식이 그 정확성과 깊이를 검증하는 일과 함께 교육의 지향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교육개혁은 언제나 한국사회의 화두였지만 묘안은 쉽지 않다. 수월성을 강조하다가 보편성을 놓치기도 하고 지나친 평등지향이 영재육성의 한계를 노출하기도 했다. 정치적인 이해득실의 공방만 요란한 일회성 개혁 퍼포먼스는 지겹게 보아왔다. 지난한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감내하며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정책입안자들의 혜안이 모여 국가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길 기대한다.


(12) 60년 만에 조국에 돌아가서 연주한 호로비츠의 트로이메라이|1시간 반복, 가사없는 음악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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