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숙성과 실패의 과정에서 소중한 노하우를 축적하는 시간이 없다면 위스키의 맛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서구에서 발전해 온 위스키 제조기술이 반도체와 같이 대단한 산업적 파급력이 있다고 할 수는 없어도
미식의 세계에서는 반도체 기술 같은 면이 있다. 아직까지는 일본이 그런 제조기술이 앞서기에 수입량이 상당하다고 한다.
개인도 조직도 축적의 시간을 게을리하면 소모품처럼 소진되고 만다. 독서나 교양을 넓히는 일에 소홀하다면 그 사람의 지적 매력자본은 결코 축적될 수 없다. 때로 그 축적물은 어느새 책이 되고 자신의 중요한 성과물이 되어 타인과 세상에서 검증된 콘텐츠로 공유할 수 있다.
예술의 세계에서도 명품은 단박에 나오지 않았다. 피카소의 어쩌면 단순한 선은 그가 정교한 데생을 연마한 세월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데뷔 전 미술 신동으로 불리며 미술교사 아버지에게 혹독한 수업을 받았던 피카소의 데생 솜씨는 정교함 그 자체였다고 알려진다.
폴 고갱도 타히티 섬에서 특유의 화풍으로 단박에 원시 자연과 여인의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고갱은 서구 문명에서 벗어나 남태평양에 까지 스며들어 빈부의 차와 신분의 높낮이 같은 문명의 흔적이 비껴가 있는 원시 그래로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생활고에 시달린 그가 다시 파리로 가서 그림을 팔려고 해도 당시로서는 도무지 인정을 받지 못하고 괴짜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이런 과정을 한 두 차례 겪은 뒤 고갱의 화풍도 다른 국면을 맞는다.
그림을 위해 거처를 옮기고 언뜻 이해할 수 없었던 고갱의 사생활에는 의문부호가 남기도 했다. 타히티 인근의 작은 섬으로 옮겨서 작업을 하기도 하고 현지 여인들과 동거도 했다. 이역에서의 힘든 생활과 매독의 후유증은 그의 건강을 해쳤다. 원주민들과도 불화를 겪으며 폭행을 당해 골절상을 입었다. 그런 와중에도 부단히 새로운 관점에서 시도하고 그리는 일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의 그림은 헐값에 팛 수밖에 없었지만 고갱의 붓에는 원시의 자연과 문명의 때를 비켜간 섬사람들의 모습이 시련 속에서 축적되었다. 가장 비싼 그림을 남긴 화가 중의 하나가 막상 생존 시에는 가장 가난한 삶을 살았다는 아이러니는 고갱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공학자 이정동은 산업체의 실패로 점철된 축적의 시간이 우리 산업을 도약시켰다고 보았다. 전구실험에서 1만 번 실채 끝에 성공한 에디슨은 자신의 9,999번의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이었다는 유명한 말로 축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살아서 영화를 보지 못했던 고흐나 고갱은 후세에 큰 울림을 주는 붓터치와 배색, 구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난과 씨름했고 사후에는 빛을 보았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계보에 이들의 작품을 결코 뺄 수는 없다.
고갱과 고흐의 삶을 실패했다고 누가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면에서 처절한 실패처럼 보이는 삶에 보석처럼 빛나는 거대한 성공이 축적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예술세계의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