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위한 몸부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진부함을 떨쳐내려는 노력은 어느 분야나 치열하다. 그래야 세상이 진보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클래식 음악계를 보면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와도 같은 인물들이 몇백 년을 군림하며 우리의 귀를 지배하는 듯하다. 자세히 보면 엄청난 음(音)의 혁명을 꿈꾼 작곡가들이 있었다. 베를리오즈가 그랬다. 표제음악의 대명사와도 같은 환상교향곡의 특이성은 클래식의 영토를 더 넓히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여기에 또 다른 프랑스인 드뷔시와 라벨이 클래식의 혁명에 가세했다.
인상주의는 프랑스에서 출발했고 음악과 미술에서 걸출한 작가와 작품들이 나왔다.
‘인상주의’ (impressionism)는 1874년부터 프랑스 화가 마네, 모네, 세잔 르누아르 같은 일군의 화풍에서 시작된 회화의 양식이다. 특히 1877년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인상주의라는 용어를 정착시킨 계기가 되었다. 사물의 정밀한 묘사보다는 특정한 인상을 포착해 흐릿한 느낌의 그림이지만 그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도록 그리는 유형이다.
클래식 쪽만 생각하면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을 언뜻 떠올릴 수 있다. 드뷔시는 프랑스 출신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클래식 작곡가이다. 인상주의의 대표 작곡가라 할만한 드뷔시는 정작 자신은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지만 어떤 유파에 속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음악을 통해 현실 세계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어떤 바보들은 이를 인상주의라 부른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드뷔시가 긍정하든 하지 않든 그의 음악은 단순한 듯 하지만, 시적이고 낭만적인 선율이 가득하다. 선명한 음색이나 쿵쾅거리는 듯한 강렬함 대신 몽환적이고 어쩌면 졸음을 부르는 느낌도 있지만, 확실히 이전의 클래식 음악과는 구분된다. 잘 알려진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달빛>을 감상해보면 느낄 것이다.
드뷔시 보다 13년 어리지만 거의 동시대를 풍미한 라벨도 생존 시 당대 최고를 다투는 작곡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드뷔시보다는 고전적인 선율을 중시하고 다소 다른 길을 걸었지만 단순한 선율로 인상주의적인 요소를 풍기는 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최고를 자처하며 타협을 거부한 드뷔시와는 달리 겸손하게도 라벨은 스스로 대가들에 비하면 작품 수도 보잘것없는 실패한 음악가라고 말년에 회고했다. 라벨의 이름에 항상 따라붙는 <볼레로>는 아마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이 아닐까. 확실히 선율이 중독성을 느끼게 할 만큼 묘미가 있다.
이후에도 프랑스에서는 혁명의 나라답게 에릭 사티 외에는 이름도 생소한 이들이 프랑스 6인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부단히 음악의 혁신을 시도했다.
6인조의 정신적 지주는 에릭 사티, 지성적 리더는 장 콕토였다. 6인조는 당시의 음악이 예술을 가장하고 너무 정제되었고, 공식에 얽매여 있었다고 생각했다. 음악에도 이종(異種) 간의 결혼,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 이른바 순수음악은 재즈, 대중음악과 결혼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6인조가 만든 음악들은 100여 년이 흐른 지금 대부분 대중에게 잊혔다. 이들이 비판한 바흐, 브람스, 베토벤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에릭 사티의 <난 당신을 원해요> (주 드 브) 같은 음악은 선율이 아름다워 살아남은 경우다. 추석에는 보름달을 보며 드뷔시의 <달빛>이나 프랑스의 음악 혁명가들의 명곡들을 감상해보면 어떨까.